북한의 국보문화유물 제22호. 문루의 크기 정면 3칸, 측면 2칸. 평양성 북성(北城)의 남문이다. 평양성은 성 안이 4개 구역으로 나뉘어 내성·중성·외성·북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성문은 대개 성들의 사방에 설치하였다.
그러나 북성만은 남·북에만 설치하였는데, 남문이 전금문이고 북문이 현무문(玄武門)이다. 따라서 평양성에는 15개의 큰 문과 그밖의 사잇문들이 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성문으로는 대동문(大東門, 내성의 동문), 칠성문(七星門, 내성의 북문), 보통문(普通門, 중성의 서문), 그리고 북성의 남문과 북문으로 전금문과 현무문이 있다.
이 전금문은 6세기 중엽에 처음 지었고, 1714년(숙종 40)에 고쳐 지었다. 문은 모란봉 기슭에 있는 대동강과 청류벽(淸流壁)을 따라 흥부동쪽으로 가다가 영명사지(永明寺址)로 올라가는 입구에 있다.
성벽을 二자형으로 어긋나게 쌓고 그 사이를 막아서 무지개문[虹霓門]을 냈다. 문에는 본래 쇠조각을 붙인 널문을 달아, 밑에는 막음돌을 꽂고 위에는 빗장을 질러 잠그었다고 한다.
문루는 흘림기둥 위에 2익공 주도리식 두공(枓栱)을 얹었으며 살미[山彌]는 길게 뽑았다. 이 건물은 그 규모에 비하여 힘받이 부재들을 굵게 하고 단청은 비교적 간단하게 하였다.
전금문은 성벽을 어기어 쌓은 사이에 문을 마련함으로써 전투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 주며, 불시에 밖으로 나와 적을 공격하는 데 유리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6·25 때 소실되고 홍예문의 축대만 남았으나 1959년에 복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