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0년(원종 1) 우정언으로 몽고에 가서 연호를 바꾼 것을 축하하고 부인(符印)을 하사한 것에 대해 사례하였으며, 아울러 축수문(祝壽文)을 올리고 다음해 돌아왔다.
처음 왕을 만나니 왕이 특히 후대하였으며, 돌아올 때 속리대(束里大)에게 반행(伴行)하게 하였으나, 전해에 속리대가 거짓칙명으로 둔병(屯兵)을 돌아오게 한 일을 들어 이를 거절하였다.
원종 초에 유천우(兪千遇)가 전선(銓選: 인사행정)을 맡으니 자기와 동년배인 전문윤를 끌어들여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로 삼았다.
1270년 개경으로의 환도가 결정되자 배중손(裵仲孫)이 승화후 왕온(承化侯 王溫)을 추대하여 삼별초의 난을 일으켰는데, 이 때 전문윤은 전 중서사인(前中書舍人) 이숙진(李淑眞)과 함께 낭중으로서 강화도 부고(府庫)를 봉하고 사람을 시켜 이를 지키도록 하여 안전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