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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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죄수를 관장하던 관서.
제도/관청
  • 설치 시기조선 전기
  • 폐지 시기조선 후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상식 (전남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3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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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죄수를 관장하던 관서.

내용

서울 중부 서린방(瑞麟坊 : 현재 종로구 세종로 1가 부근) 의금부 옆에 있었다.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고 관제를 정할 때 고려의 전옥서를 답습하여 관원을 정하였다.

관원으로 영(令) 2인, 승(丞) 2인, 사리(司吏) 2인을 두었다. 그 뒤 1466년(세조 12) 『경국대전』 체제가 정비되면서 종6품아문으로 정착되어 조선 말기까지 계승되었다.

관원으로 제조 1인은 형방승지가 겸임하였으며, 실무관리로 주부(主簿, 종6품) 1인, 봉사(奉事, 종8품) 1인, 참봉(參奉, 종9품) 1인과 서리(書吏) 4인 및 나장(羅將) 30인을 두었다가 뒤에 서리는 6인으로 증원되었고, 나장은 5인으로 줄었다.

왕은 자주 사람을 보내어 전옥서와 의금부의 죄수를 살폈는데, 예종 때 전옥서 죄수의 가쇄(枷鎖)가 풀려 있어 매일 죄수를 검찰할 책임이 있는 형조월령낭관(刑曹月令郎官)과 전옥서의 주부 및 참봉이 직무태만으로 의금부에 수금되어 국문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전옥서는 형조의 지휘를 받아 죄수를 관장하는 곳으로 오늘의 교도소와 같으며, 그 상부기관인 형조는 매월 월령낭관을 교대로 파견하여 날마다 전옥서에 수감되어 있는 죄수를 검찰하였다.

참고문헌

  • - 『경국대전(經國大典)』

  • - 『속대전(續大典)』

  • - 『대전회통(大典會通)』

  •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 『한경지략(漢京識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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