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상 영정 및 한유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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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상 영정
전일상 영정
회화
작품
국가유산
조선 후기의 무신 전일상(田日祥, 1700~1753)의 모습과 생활상을 그린 초상화와 풍속화.
이칭
이칭
전일상초상, 석천한유도, 석천공한유도
시도문화유산
지정 명칭
전일상영정및한유도(田日祥影幀및閒遊圖)
분류
유물/일반회화/인물화/초상화
지정기관
충청남도
종목
충청남도 시도유형문화유산(1987년 12월 30일 지정)
소재지
충청남도 홍성군 아문길 20 (홍성읍, 홍주성역사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전일상 영정 및 한유도는 조선 후기의 무신 전일상의 모습과 생활상을 그린 초상화와 풍속화이다. 1748년(영조 24) 화원 김희겸이 그렸다. 전일상(1694∼1760)은 5대를 연이은 무관 집안에서 태어나 무관으로 이름을 떨쳤다. 「전일상 영정」은 오사모에 청포단령의 관복을 입고 호피를 깐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18세기 전반 전형적인 초상화 표현 방식을 보여준다. 「석천한유도」는 무인의 생활상을 그린 풍속화로 풍속화에 초상화 기법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1987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키워드
목차
정의
조선 후기의 무신 전일상(田日祥, 1700~1753)의 모습과 생활상을 그린 초상화와 풍속화.
구성 및 형식

1987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748년(영조 24) 작. 화원 김희겸(金喜謙 : 화원 김희성과 동일 인물)이 그린 전일상의 초상화와 당시 생활상을 묘사한 풍속화이다. 전일상은 본관이 담양(潭陽)으로, 5대를 연이은 무관(武官) 집안에서 태어나 역시 무관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는 무관인 전운상(田雲祥)의 아우이기도 하다.

내용
  1. 석천한유도

「석천한유도(石泉閑遊圖)」에는 “무진년 6월 일에 제작함(戊辰六月日製)”이라는 관지(款識)와 “김희겸(金喜謙)”이라는 백문방인(白文方印)이 찍혀 있다. 무진년은 그가 전라우수사(全羅右水使)를 지냈던 1748년이다.

김희겸은 전주 출신의 화원으로 1748년 어진을 개모(改模)할 때 참여하여 그 공으로 변장(邊將)에 제수되었다. 초상으로 이름이 높았던 탓인지 무관 전일상의 초상을 제작하는 일에 초청을 받고 그때 「석천한유도」를 함께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 그림에서는 무인의 호걸스런 모습이 표현되었다. 누각 위 난간에 기댄 주인공이 오른손에 잡고 있는 매, 바로 위 기둥에 걸려 있는 칼, 누각 아래에 건장한 체구에 험상궂게 생긴 마부가 물로 씻기고 있는 말, 담배와 술 시중을 들거나 가야금으로 흥취를 돋우는 관기(官妓) 등이 무인을 상징하는 소도구들이다. 한가로운 장면 속에도 무장의 기개와 풍류가 함께 어우러져 버드나무마저 그 가락에 흥겨워하는 듯하다.

화면을 대각선 방향으로 나누어 계화(界畵)로 그린 누각을 화면 오른쪽 위에, 세마(洗馬)의 장면을 왼쪽 아래에 두어 실내와 실외의 생활상을 적절히 배치하였다. 그리고 버드나무의 휘날리는 방향으로 보는 이의 시선을 누각의 풍경에서 세마의 장면으로 자연스럽게 이동시키고 있다.

담채(淡彩)와 담묵(淡墨)으로 부드럽게 표현하였다. 그러나 나무와 언덕에 드문드문 청록의 태점을 찍고 기둥에 약하게 음영을 넣어 화원식의 채색 화풍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인물의 표현 기법에 있어서는 흥미로운 부분이 발견된다. 전일상의 얼굴 표현을 보면, 초상화의 기법이 적용된 것이다.

육리문(肉理文)과 수염을 자세히 표현하고 갈색으로 살빛을 내었다. 옷의 선묘는 정두서미묘(丁頭鼠尾描)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마고자에는 문양을 섬세하게 묘사하였다. 이 풍속화와 함께 소장되어 있는 초상화의 기법을 적용한 것이다. 반면에 관기들의 표현에서는 풍속화의 기법으로 간략하게 표현하여 대조적이다. 인물의 묘선은 변화가 적고 가는 유사묘(游絲描) 계통이다. 여인들의 의상이나 치맛 주름의 표현은 필자 미상의 「회갑연도(回甲宴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와 비슷하다.

이 그림은 무인의 생활상을 그린 풍속화이고, 풍속화에 초상화 기법을 활용한 새로운 표현 기법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1. 전일상영정

「전일상영정」은 오사모(烏紗冒)에 청포단령(靑袍團領)의 관복을 입고 호피를 깐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무릎 위에 놓고 발을 족좌 위에 올려놓았다. 보기 드물게 정면관(正面觀 : 앞에서 바라본 모습)을 취하고 있다. 족좌는 원근법을 적용하여 묘사되었다. 얼굴은 선으로 근육을 표시하고 그 주위에 음영을 넣어 표현하였다. 옷 주름은 철선묘로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게 묘사하였다. 18세기 전반 초상화의 전형적인 표현 방식을 보여준다.

전일상은 조선 후기의 무관으로 사후에 가선대부(嘉善大夫) 병조참판(兵曹參判) 겸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로 추증되었다. 따라서 종이품의 병조참판에 맞는 쌍호흉배에 학정금대를 착용한 모습이여야 하나, 쌍학흉배가 장식된 문관복에 서대를 착용한 모습으로 묘사되어있다. 이는 전일상이 무관이지만 문무를 겸비하였다는 점과 사후 추증되었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각색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문관복의 경우 흉배 상단에 위치한 학의 머리가 오른쪽을 향하고 있는데, 「전일상영정」에서는 쌍학흉배에서 학의 머리 방향이 통일되지 않고 좌우가 뒤바뀌어 있다. 이러한 예는 「이인엽초상」,「이덕성초상」, 「남발초상」, 「정탁초상」, 「김중만초상」(보물, 1981년 지정), 「이원익초상」, 「권엽초상」(평장본)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관복을 입은 실제 인물을 대면하여 그린 것이 아니라 사후 추사한 결과로 인해 초래된 현상이다.

참고문헌

『석천전일상공행장(石泉田日祥公行狀)』
『한국의 초상화 : 형과 영의 예술』(조선미, 돌베개, 2009)
『한국의 풍속화』(정병모, 한길아트,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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