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3년(명종 23)에 운문(雲門)의 김사미(金沙彌), 초전(草田)의 효심(孝心) 등이 난을 일으키자, 대장군으로 장군 이지순(李至純)·이공정(李公靖)·김척후(金陟侯)·김경부(金慶夫)·노식(盧植) 등을 거느리고 토벌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함께 출정한 이지순은 집권무신 이의민(李義旼)의 아들이었다. 이의민은 신라를 부흥시키려는 야망을 가지고 김사미·효심 등과 내통하였고, 이지순은 김사미·효심 등이 재물이 많다는 말을 듣고 군대의 기밀을 누설하였기 때문에 관군이 계속 패전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이지순을 군법으로 다스리면 이의민이 두렵고, 그대로 두면 적이 더욱 성할 것이므로 이를 결정하지 못하고 음독자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