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붕지(朋之). 정태화(鄭太和)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정혁선(鄭赫先)이다.
1736년(영조 12) 영릉랑(寧陵郎)에 음보(蔭補)되었으나, 공부를 계속하여 1738년에는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그 뒤 상의원(尙衣院)과 예빈시의 직장부터 관직을 시작하여 내외의 여러 직책을 두루 거쳤다. 1768년에 그의 아들 정만순(鄭晩淳)이 왕에게 시종하였기 때문에 그 은혜를 입어 통정대부에 올라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가 되었고, 다시 오위의 장에 올랐다.
1773년에는 왕의 특명으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올랐다. 성격이 관후하고 화기가 넘쳐흘러 다른 사람의 장단점은 결코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청렴결백하여 여러 주군(州郡)의 수령을 거쳤음에도 청빈하였다.
평소에 수풀을 좋아하여 여가가 생기면 한필의 말을 타고 교외로 나가 나무를 가꾸고 산속을 자주 거닐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관원으로 알지 못하고 한낱 산중에 살고 있는 필부로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