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수고당고택은 조선 후기에 지은 강원도 정선군에 있는 한옥이다. 조선 숙종 때 이조판서를 역임한 이자가 고향으로 돌아와 지은 집으로, 안채는 1677년, 별채는 1683년에 지어졌다. 이 집은 ㄱ자형 안채와 ㄱ자형 행랑채(중문간채), 그리고 일자형 사랑채가 튼ㅁ자형의 배치를 이루며, 사랑채 앞(서쪽)에 별당인 수고당이 위치한다. 이 고택은 겹집 구성과 고미반자 등 영동과 영서 지방의 지역적 특성을 잘 보여주는 양반 주택이다. 이 고택에는 국가민속문화유산인 외재 이단하 내외분의 옷이 보관되어 있다.
정선 수고당고택(旌善 守孤堂古宅)은 조선 숙종(肅宗, 재위 1674∼1720) 때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역임한 수고당(守孤堂) 이자(李慈)가 고향으로 돌아와 지은 집이다. 이자의 10대손이 이종후(李種厚)이다. 상량문(上樑文)에서 안채는 1677년(숙종 3)에 지었고, 별채는 1683년(숙종 9)에 지었음을 알 수 있다. 이자는 이곳에 은거하면서 글짓기와 휴양으로 여생을 보냈다고 하는데 구미정(九美亭)을 건축하기도 하였다.
90여 년 전에 안채를 크게 수리하였다고 한다. 과거에 ‘임계(臨溪) 이종후 가옥’으로 불리었으나 2017년 ‘정선 수고당고택(旌善 守孤堂古宅)’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완만한 경사지에 위치하는 이 집은 ㄱ자형 안채와 ㄱ자형 행랑채(중문간채), 그리고 일자형 사랑채가 튼ㅁ자형의 배치를 이루며, 사랑채 앞(서쪽)에 별당인 수고당이 위치한다. 전체 영역은 담으로 둘리어 있으며 이 담에서 사랑채 북측면까지도 담을 쌓아서 안채 영역과 수고당 영역 사이를 구분하고 있다.
안채는 자연석 막쌓기 위에 외벌대 장대석을 두른 1m 내외의 비교적 높은 기단(전면 기준) 위에 지어졌다. 정면 5칸 반, 측면 6칸 규모다. 영동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겹집인데, 고방과 대청, 건넌방이 있는 몸채는 앞의 반 칸을 툇마루로 처리하였다. 고방 앞에 안방과 부엌이 꺾여서 이어진다. 안방 앞에는 쪽마루를 설치했고 대청 앞에는 모두 문을 달았다. 고방은 널마루 바닥에 천장은 고미반자(나무 반자틀을 서까래 모양으로 만들고 그 위에 산자를 엮어 흙을 깔아 마감한 천장)로 처리하였다. 몸채와 날개채의 뒷면에 각각 높은 와편 굴뚝을 하나씩 세웠다. 가구는 무고주 5량 구조, 지붕은 홑처마 팔작 기와지붕이다.
사랑채는 앞에 너른 마당을 두고 자연석 쌓기 위에 장대석을 두른 기단 위에 지어진 일자형 건물이다. 채의 북쪽 측면으로 협문을 낸 담이 어어져 사랑채 영역이 안채 영역과 구분된다. 정면 6칸 반, 측면 두 칸 규모로, 앞뒷면과 남측면에 툇간을 구성하고 앞과 측면에는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실은 큰사랑방과 대청 각 2칸, 작은 사랑방 1칸 반으로 구성되는데, 대청 앞에도 문을 달았다. 큰사랑방과 대청의 뒤 툇간에 고방을 들였다. 큰사랑방 뒤에는 높은 와편 굴뚝을 세웠다. 가구는 무고주 5량 구조이며, 지붕은 홑처마 팔작 기와지붕이다.
행랑채는 정면 5칸, 측면 3칸 반 규모의 ㄱ자형 건물로 사랑채와 안채에 연결되어 있다. 사랑채 쪽에 고방과 중문간을 설치하였고 중문간 옆에 외양간이 한 칸 반 밖으로 돌출되었다. 그 옆으로 곳간이 이어진다. 가구는 3량 구조이며, 홑처마 맞배 기와지붕을 이었다.
별채인 수고당은 사랑채의 서쪽 너른 마당 가운데에 배치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화강석 장대석 기단 위에 지어졌는데, 정면 좌측 2칸은 마루방이고 앞에 툇마루가 설치되었다. 오른쪽 한 칸은 뒤는 마루를 깐 고방, 앞은 보관실이다. 가구는 무고주 5량 구조이며, 지붕은 홑처마 팔작 기와지붕이다. 우측 지하에 약 3.3㎡ 정도의 석실(石室)이 있는데, 이곳은 선조인 이식(李植)과 이단하(李端夏, 이자의 부친)의 서책들을 보관하기 위한 장소로 마련되었다.
정선 수고당고택은 겹집 구성 등 영동 및 영서지방의 지역적 특성을 잘 보여주는 양반 주택이다. 이 고택에는 국가민속문화유산인 외재 이단하 내외분 옷이 보관되어 있는데, 조선 중기의 복식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