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운조루 고택

  • 생활
  • 유적
  • 조선 후기
  • 국가문화유산
조선 후기에 건립된, 전라남도 구례군에 남아 있는 한옥.
이칭
  • 약칭운조루 고택
유적/건물
  • 건립 시기조선 후기
  • 건물 높이5.22m(안채)
  • 건물 층수1층
  • 건축 양식한옥
  • 규모10필지/4,411㎡
  • 소재지전라남도 구례군
  • 정면 너비15.752m(안채)
  • 정면 칸수6칸(안채)
  • 측면 길이13.323m(안채)
  • 측면 칸수6칸(안채)
국가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2년
  • 한필원 (한남대학교 교수)
  • 최종수정 2025년 04월 21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구례 운조루 고택은 조선 후기에 건립된, 전라남도 구례군에 있는 한옥이다. 1776년(영조 52)에 유이주가 지었다고 하는데 그 터가 금환락지(金環落地)라는 명당자리이다. 행랑채, 사랑채, 튼ㅁ자형을 이룬 안채 · 안 행랑채 · 중간 사랑채, 그리고 사당채로 이루어졌는데 모든 채는 앞에 마당을 두고 있다. 이 집은 조선 후기 양반집의 건축 형식을 잘 보여 주는데 사랑채와 중간 사랑채에 누마루를 설치하는 등 생활 양식에 잘 대응하도록 공간을 독특하게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정의

조선 후기에 건립된, 전라남도 구례군에 남아 있는 한옥.

건립 경위

1776년(영조 52)에 삼수부사(三水府使)와 낙안군수(樂安郡守)를 지낸 유이주(柳爾胄, 1726~1799)가 지었다고 한다.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에 의하면 이곳은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져 있는 형국인 금환락지(金環落地)라는 명당자리라고 한다. 대지 앞에는 연못이 있는데 이는 1865년(고종 2)에 원래의 것을 더 깊게 판 것이라 한다.

변천

안채의 추녀에 1916년에 중수(重修)한 기록이 있고 큰사랑채 또한 몇 차례 부분적으로 수리를 하였으나 모두 대체로 초창(初創) 때의 규모와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안 행랑채 · 중간 사랑채 또한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다. 유이주가 1793년(정조 17)에 쓴 분재기(分財記)인 「장자구처기(長子區處記)」에 행랑채는 대문간 양쪽에 행랑 칸수가 각각 12칸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는 동쪽 11칸, 서쪽 7칸이다. 중간 사랑채의 귀래정(歸來亭)과 행랑채를 연결했던 4칸의 바깥 사랑채가 있어 하인들이 기거했으나 1901년(광무 5)에 철거되었다.

형태와 특징

집의 구성은 맨앞에 행랑채, 튼ㅁ자형을 이룬 안채 · 안 행랑채 · 중간 사랑채(안사랑채), 여기에 서쪽으로 연결된 (큰)사랑채, 북동쪽 가장 뒤에 있는 사당채로 이루어졌다. 모든 채는 앞에 마당을 두고 있고 안채 부엌의 서쪽에는 우물이 있는 부엌 마당이 조성되었다.

솟을대문칸이 설치된 행랑채는 19칸의 긴 건물로 대지의 앞쪽 경계선에 위치해 대지의 전면을 가려 준다. 사랑채는 대청 서쪽으로 누마루가 돌출되고 뒤로 마루방과 온돌방이 이어져 T자형을 이룬다. 사랑채의 가구는 3량구조,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안마당은 사랑채의 부엌을 겸한 중문간으로 진입한다. 안채는 각각 전면 2칸의 안방과 대청을 중심으로 그 양쪽에 부엌과 건넌방으로 구성된 몸채를 중앙에 둔 ㄷ자 집인데 앞의 안 행랑채 · 중간 사랑채와 함께 안마당을 에워싸고 있다. 안채의 가구는 5량구조로 팔작지붕을 이었다. 안채와 사랑채에는 원기둥을 사용했다. 안 행랑채는 일자형 곳간으로 그 서쪽 끝에 중간 사랑채가 결합되어 있다. 중간 사랑채는 한 칸 누마루를 앞으로 돌출시키고 그 서쪽 벽에는 난간을 설치했는데 이 누마루에 귀래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서쪽 아래에 안채로 들어가는 경사로가 있다.

의의 및 평가

구례 운조루 고택은 조선 후기 양반집의 건축 형식을 잘 보여 주고 있고 생활양식에 잘 대응하도록 공간을 독특하게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이 집은 대체로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창건 당시의 모습을 보여 주는, 부감기법으로 그린 「전라구례오미동가도(全羅求禮五美洞家圖)」, 이 집에서의 생활을 기록한 일기, 「장자구처기(長子區處記)」 등이 전해져 당시의 생활상이 잘 나타난다. 또한 「청주성도(淸州城圖)」, 「상당산성도(上黨山城圖)」 등 상당수의 유물이 보존되어 있어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크다.

참고문헌

  • 단행본

  • - 대한건축사협회 편, 『한국 전통 건축 제4집 민간 건축』 2(보성각, 2005)

  • - 한국건축역사학회 편, 『한국 건축 답사 수첩』(동녘, 2006)

  • - 문화재청, 『중요민속자료(제8호) 기록화 보고서 구례 운조루』(문화재청, 2007)

주석

  • 주1

    : 건축물 따위의 낡고 헌 것을 손질하며 고침. 우리말샘

  • 주2

    : 절을 처음 세움. 우리말샘

  • 주3

    : 가족이나 친척에게 나누어 줄 재산을 기록한 문서. 우리말샘

  • 주4

    : 부연을 달지 않고 처마 서까래만으로 된 처마. 우리말샘

  • 주5

    : 위 절반은 박공지붕으로 되어 있고 아래 절반은 네모꼴로 된 지붕. 우리말샘

  • 주6

    : 지형이나 방위를 인간의 길흉화복과 연결시켜, 죽은 사람을 묻거나 집을 짓는 데 알맞은 장소를 구하는 이론. 우리말샘

  • 주7

    : 풍수지리에서, 후손에게 장차 좋은 일이 많이 생기게 된다는 묏자리나 집터. 우리말샘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