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동관댁(南楊州 東官宅)은 소유자인 여경구의 장인인 이덕승의 8대조가 지었다고 전하는 집이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문간채는 칸의 구성과 실의 용도에 변화가 있었다. 1970년대까지는 사랑채 맞은편, 문간채와 광채 사이에 긴 일자형 초가의 헛간이 있어 배치가 日자형이었으나 지금은 사라진 상태다.
이 집은 남양주시 내곡리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 태뫼산 기슭에 자리한다. 문간채를 전체 주거 영역의 측면에 남서향으로 배치해 측면 진입 방식을 택하였다. 그리고 지형에 순응해 영역을 횡 방향으로 배열하였다. 대문간을 들어서면 일자형 사랑채와 사랑마당으로 이루어지는 사랑채 영역, T자형 안채가 안채와 ㄴ자형 광채가 튼ㅁ자형으로 안마당을 둘러싼 안채 영역이 전개된다. 사랑채 뒤의 높은 곳에 사당 영역이 있는데 사당만은 위계상 횡 방향에 놓지 않고 뒤에 배치하였다. 이 세 영역은 모두 문간채와 직각 방향인 남동향으로 나란히 배치되었다.
문간채는 정면 7칸, 측면 1칸의 일자형 건물로 가운데 칸이 대문간이다. 앞에 바깥마당을 두었다. 대문간 오른쪽 세 칸 앞에는 담을 둘러 행랑마당으로 만들었다. 가구는 3량 구조로 홑처마 맞배 기와지붕을 이었다.
사랑채는 자연석을 고르게 쌓은 네벌대 기단 위에 자리힌다. 2칸 사랑방, 대청과 건넌방은 각 1칸으로 전면 4칸인데 이 4칸의 정면과 사랑방 측면에 툇간을 덧붙였다. 정면의 툇간에는 툇마루, 좌측면의 툇간에는 사랑방의 부속 공간으로 반침과 다락을 설치하였다. 뒤로는 사랑방과 대청, 건넌방의 2칸반에 걸쳐 쪽마루를 설치했으며, 그 양쪽에는 반침을 돌출시켜 설치하였다. 대청 전면에는 사분합 여닫이문을 설치하였다. 사랑방과 대청 사이에는 용자살을 끼운 네 짝의 들어열개문, 건넌방과 대청 사이에는 만자살을 끼운 세 짝의 들어열개문을 설치해 모든 실내 공간을 하나로 통합해 사용할 수 있다. 가구는 1고주 5량 구조이며, 지붕은 홑처마 팔작 기와지붕이다. 광채의 오른쪽 끝에 있는 중문을 통해 들어가면 안채 영역이다.
안채는 자연석 기단 위에 지어졌다. 방, 대청, 건넌방으로 구성된 몸채에 안방 앞으로 부엌이 돌출하고(부엌채) 옆으로 마룻방과 광이 각각 1칸 돌출한(곁채) T자형 건물이다. 부엌채가 외부 공간을 안마당과 뒤뜰 혹은 뒷마당으로 구분해 주는데 뒷마당이 몸채의 뒤가 아니라 옆에 조성된 것은 경사 지형에 적응해 공간을 횡으로 배열한 결과로 생각된다. 대청과 건넌방 앞에는 툇마루를 설치했으며 대청의 전면은 창호가 설치되지 않고 개방되어 있다. 안방은 뒷마당 쪽에 툇마루를 설치하고 이 툇마루에서 쪽마루를 이어 마룻방과도 연결된다. 부엌은 앞으로 안마당, 뒤로 뒷마당으로 연결되며, 상부는 안방에서 이용하는 다락방이다. 가구는 몸채는 1고주 5량, 부엌채는 1고주 4량, 곁채는 3량 구조이다. 지붕은 홑처마로 몸채는 팔작 기와지붕, 두 날개채는 맞배 기와지붕이다. 몸채 지붕의 높이는 다른 두 날개채보다 높아 채의 구성이 외관에 드러난다.
안채와 함께 안마당을 둘러싸는 광채는 정면 4칸, 측면 6칸의 ㄴ자형 건물이다. 광채는 안채와 사랑채 영역을 구분해 주는데, 꺾이는 부분에 2칸의 중문간이 있어 안채와 사랑채의 시선이 연결되지 않는다. 지붕은 홑처마 우진각 기와지붕인데 쪽문이 설치된 좌측면 쪽만 맞배이다. 가구는 3량 구조이다. 광채, 안채, 사랑채의 기단은 서로 단을 이루며 연결된다.
사당은 사랑채의 뒤편 화계 위, 이 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정면 2칸, 측면 1칸반으로 앞 반칸은 툇간이다. 좌우 측벽은 와편과 자연석을 쌓아 화방벽으로 처리하였다. 전면에는 사분합세살문을 설치했으며, 바닥은 실내와 툇간 모두 우물마루이다. 가구는 1고주 4량 구조이다.
이 집은 경사 지형에 순응해 안채, 사랑채, 문간채, 사당채 영역 등 다양한 영역을 횡 방향으로 정연하게 구성한 한옥이다. 18세기 한옥 본래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