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전기의 수상(首相)인 문하시중(門下侍中)이 중찬(中贊)을 거쳐 1308년(충렬왕 34)에 개칭되었다. 이 때 정원은 1인이었다.
이 후 1330년(충숙왕 17)에 중찬으로 바뀌었다가 얼마 뒤에 정승으로 환원되었는데, 이와 동시에 정원도 좌우 각 1인으로 늘어났으며, 그 가운데 우정승이 수상에 해당하였다.
1354년(공민왕 3)에 다시 중찬으로 바뀌었다가 곧 정승으로 환원되었으며, 1356년에는 문종 때의 관제에 따라 정원 1인의 문하시중으로 고쳐졌다. 그 뒤 1362년에 또다시 우정승과 좌정승으로 되었으나 1369년 이 둘을 합쳐 문하시중으로 개칭되어 폐지되고, 이후로는 설치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