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임종(林宗), 호는 오헌(迃軒). 정유징(鄭有徵)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광주(鄭匡周)이고, 아버지는 참봉 정운서(鄭雲瑞)이며, 어머니는 이정흥(李鼎興)의 딸이다.
1721년(경종 1) 유학(幼學)으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승문원에 들어갔다가, 1726년(영조 2) 예조좌랑에 올랐다. 이 때 강원도일대 국릉(國陵)의 관리상태를 살폈는데, 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평창과 정선의 군수 등을 처벌하게 하였다.
1744년에 다시 헌납으로 임명되어 왕이 간원들을 처벌하는 일을 규탄하다가 파직되기도 하였다. 그 뒤 1748년에 경상도의 영해부사로 발탁되어 지방행정의 폐단을 시정한 결과 왕으로부터 포상받았다.
1758년 왕으로부터 ‘정직하고 청렴하여 보배로운 인재’라는 칭찬을 받았다. 그 뒤 여러 관직을 거쳐 호조참판에 이르렀는데, 그의 성격은 꾸밈을 싫어하고 구차하게 화합하지 않고 소신대로 추진하였으며, 직언을 잘 하였다. 이와 같은 성행(性行)이 뒷날까지 인정되어 1796년(정조 20)에는 청백리로 추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