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우물터.
발굴경위 및 결과
형태와 특징
사질층의 바닥에는 직경 98㎝, 높이 32㎝에 이르는 잘린 큰 항아리를 아가리가 바닥에 닿도록 거꾸로 엎어 놓았는데, 이 항아리는 거친 모래를 섞은 두께 3㎝에 이르는 회색연질토기(灰色軟質土器)인 와질토기(瓦質土器)이다.
B호 우물은 원형할목정으로, 반으로 쪼갠 나무를 평면 원형으로 맞추어 땅에 박아 흙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고 물이 고이게 한 우물이다. 우물은 직경 5∼20㎝에 이르는 통나무를 길이 155㎝ 정도로 자른 다음 절반으로 쪼개어 아래 끝은 말뚝처럼 뾰족하게 다듬고, 쪼갠 면을 안으로 둥글게 맞추어 박은 것이다. 우물은 반으로 쪼갠 나무 28개를 이용하여 축조하였는데, 우물의 평면 형태는 원형이며, 규모는 직경 95㎝ 정도이다.
유물은 석곽도관정 주변에서 등잔(燈盞)이 확인되었다. 등잔은 직경 7.7㎝, 높이 3㎝의 완형태의 토기로, 가운데에 돌기형의 심지 받침이 있는 것이다. 등잔 바닥에는 성형 후 바닥과 분리하기 위해 끈을 움직여 떼어낸 자국이 남아 있다. 이러한 형태의 등잔은 부여능산리사지, 익산 미륵사지, 부여부소산성 등 백제 사비기 관청, 사찰 등 중요 유적에서 출토된 바 있다.
이외에도 우물 바닥과 윗면 주변에서 토기 조각들이 출토되었는데, 대부분 파편이어서 정확한 기본 모양을 추정하는 데 한계가 있다. 토기 몸통 표면에 격자무늬와 어깨 부분에 톱니무늬 등이 타날된 두꺼운 큰독 조각, 격자무늬와 집선문(集線文: 다양한 모양으로 선을 모아 둔 무늬)이 타날된 아가리가 직립하거나 바깥쪽으로 구부러진 토기 조각 등이 확인된다.
이 토기들은 형태와 문양으로 보아 원삼국시대(마한)의 토기로 추정되어 우물과 관련 없는 앞 시대의 유물로 판단된다. 석곽도관정 주변에서는 안산암제의 뗀석기 2점과 삼각모양돌칼 3점 등 청동기시대 석기가 수습되기도 하였다.
의의 및 평가
정읍가정리유적의 A호(석곽도관정)와 같이 석재와 토기를 혼용하여 조성한 우물은 백제 사비기에 해당하는 부여가탑리유적 2호 우물에서 확인된 바 있다. 하지만 가정리 A호와 같이 정연한 석축 시설 내부에 토기를 세워 조성한 형태는 거의 확인된 바 없다.
또한, 나무로 조성한 우물의 경우에도 가정리 B호(원형할목정)와 같이 절반으로 쪼갠 통나무를 둘러 만든 것도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정읍가정리유적의 두 가지 형태의 우물은 구조나 주변에서 출토된 등잔으로 보아 백제 사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지방의 우물 모습을 보여 주는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단행본
- 全榮來, 「井邑佳井里 井戶遺構」(『全北遺蹟調査報告』, 全羅北道博物館, 1973)
논문
- 이명호, 「백제 집수시설에 관한 연구」(목포대학교석사학위논문, 2009)
- 이신효, 「백제 우물연구」(『湖南考古學報』 20, 2004)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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