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정읍시 소성면 보화리의 ‘부처당이’라는 언덕 비탈에 서 있는 여래상 두 구로 구성된 석조이불입상이다. 백제시대 조성된 불상 가운데 가장 남쪽 지역에서 발견된 불상이라는 점과 이불의 구성에서 귀중한 자료이다.
석조이불입상은 여래상 2구가 나란히 서 있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형식으로 현재는 보호각에 봉안되어 있다. 두 구 모두 여래상인 점에서 중요하지만 도상적 특징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두 불상은 서로 유사한 형식과 특징을 보이며 불상의 전체 높이가 각각 256㎝, 227㎝로 크기에서 차이를 보인다. 향 좌측의 큰 불상은 광배와 대좌 일부가 결실되었고, 향 우측의 작은 불상은 오른쪽 팔이 없어진 상태이다. 또한 두 불상 모두 얼굴 부위의 마모가 심한 편으로, 특히 두 눈은 인위적으로 깊이 패여져 있다.
이 불상은 아기와 같은 단구의 비례에 부드러운 조형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큰 불상은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가슴 위에 놓고 오른손은 옷자락을 잡듯이 늘어뜨렸다. 신체의 굴곡은 적은 편이며 민머리에 볼록 솟은 동그란 육계, 살이 오른 통통한 얼굴, 편단우견식 대의 그리고 자연스러운 옷주름이 특징이다. 편단우견의 대의는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팔목으로 자연스럽게 흘러 내렸는데 이는 삼국시대 6세기에 특히 유행했던 형식으로 중국의 북위와 관련되는 특징이다. 작은 불상 역시 비슷한데, 다만 복부를 가로지르는 옷주름이 도드라지고 하반신 주름도 사선형으로 단을 이루며 다리의 굴곡을 드러내고 있는 점과 복부를 앞으로 내민 듯한 자세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 석조이불입상은 민머리에 동그랗게 솟은 육계, 양감 있는 미소 띤 얼굴, 부드러운 조형성이 특징으로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보물, 1963년 지정),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국보, 1962년 지정) 등 백제 불상과 비교된다. 다만 신라의 불상에서 유행했던 편단우견식의 대의를 입은 점이 독특한데, 이는 백제의 불상으로는 유일한 사례인 점에서 주목된다. 즉, 이 작품은 6세기 백제 불상의 형식과 양식적 전통이 이어지면서 신라로부터 유입된 새로운 요소가 결합된 것으로 이해된다.
정읍 보화리 석조이불입상은 이불이라는 도상과 더불어 부드러운 조형감, 아기같은 신체 비례와 얼굴, 편단우견의 대의 등이 특징인 백제 7세기의 작품으로 판단된다. 백제 불상이 정읍에서 제작된 점과 이를 통해 백제의 영향력이 넓은 지역으로 확대되었음을 알려주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