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 관제에는 태사(太師)·태부(太傅)·태보(太保) 등 삼사(三師)와 태위(太尉)·사도(司徒)·사공(司空) 등 삼공(三公), 내직(內職)으로 귀비(貴妃)·숙비(淑妃)·덕비(德妃)·현비(賢妃) 및 외명부(外命婦)의 공주·대장공주(大長公主) 등이 있었다.
그러나 삼사·삼공은 실무를 담당하는 실직(實職)이 아니었고, 고려 전기의 문산계(文散階)·무산계(武散階)에는 종1품 이하만이 설치되었으므로 관계(官階)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셈이었다. 따라서, 삼사·삼공에 오를 경우에는 관계는 낮고 관직은 높은 상태가 되어 행수법(行守法)에 따라 수직(守職)으로 제수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 뒤 충렬왕 때 삼사·삼공이 모두 혁파되었으며, 1298년(충렬왕 24) 충선왕에 의해 종실(宗室)의 대군(大君)·원군(院君)이 정1품으로 규정되었다. 1308년(충렬왕 34) 충선왕의 복위와 동시에 문산계가 개정되면서 삼중대광(三重大匡)이 처음으로 정1품 관계로 두었고, 곧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으로 고쳤다가 1310년(충선왕 2) 다시 삼중대광으로 되었다.
1356년(공민왕 5)에는 문산계가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와 의동삼사를 상하로 하는 쌍계(雙階)로 개정되고 삼사·삼공이 다시 두었으며, 공(公)·후(侯)·백(伯)·자(子)·남(男) 등의 작(爵)이 부활되어 정1품으로 되었다. 그러나 삼사·삼공은 실직이 아니었고, 결원일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362년 삼사·삼공·작이 다시 폐지되었으며, 문산계는 벽상삼한삼중대광·삼중대광으로 개정되었다. 이후 문산계에만 변동이 있어 1369년 특진보국삼중대광(特進輔國三重大匡)과 특진삼중대광으로 개정되었다가, 1372년 다시 벽상삼한삼중대광·삼중대광으로 고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