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남도 이원 출생. 아버지는 정황언(鄭晃彦)이며, 어머니는 안순녀(安順女)이다. 함흥농업학교와 평양 숭실중학교를 졸업하고 협성중학 고등과를 나왔다.
1921년 함경남도 갑산군 동명보통학교와 현명공립보통학교의 교원으로 재직하다가 1928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 임학과를 졸업한 뒤 귀국하여 1931년부터 조선총독부에서 근무하였다.
광복 후 경상남도 산림과장, 1947년 마산시장을 지냈으며, 같은 해 경남목림주식회사 사장에 취임하였다. 1948년 국민회경남지부 부위원장과 1950년 경상남도 산림조합 이사장을 역임하였고, 1951년 국가공무원 전형위원으로 재직하기도 하였다. 1952년 국립부산대학교 후원회장, 농림재건위원회 위원을 지냈고 1952년 농림부차관에 임명되었다.
1954년 중앙산림조합연합회 회장을 맡게 되었고 농림정책자문위원, 사단법인 대한농기구협회 회장이 되었다. 1957년 농림부장관에 임명되었고, 같은 해 농업협동조합 중앙회를 창립하였다.
1960년 4·19혁명 후 국무위원 전원이 구속될 때 구속, 수감되었으며 이때 공민권도 박탈당하였고, 1961년 군사정부에 의하여 부정축재오판으로 또 다시 수감되어 옥고를 치렀다.
1971년 한국임정연구회(韓國林政硏究會) 초대회장에 피선되어 재직하였으며, 1981년 평화통일정책자문위원과 1983년 한국임학회(韓國林學會) 고문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팔십성상(八十星霜)을 회고하며:월탄회고담』·『한국임정연구회창립10년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