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홍문관직제학, 도승지, 이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전적·공조좌랑·형조좌랑·장례원사의(掌隷院司議)·황해도도사·병조정랑·공조정랑·예조정랑 등을 역임한 뒤, 1511년 헌납이 되었다. 그 뒤 지평·장령·집의·승문원참교·내자시정(內資寺正)·사섬시정(司贍寺正)·사재감정을 역임하였다.
1518년 홍문관직제학을 거쳐 이듬해 도승지가 되었으나, 사헌부·사간원으로부터 적합한 인물이 아니라는 탄핵을 받아 곧 이조참의로 옮겼다. 그 해 기묘사화가 일어나 대간의 탄핵으로 공조참의로 피척(被斥)되어 수년 있다가 죽었다.
침착하고 행동이 곧으며 말이 없고 근검하였을 뿐만 아니라, 남의 잘못을 들추지 않고 담박(淡泊)하여 명리에 급급하지 않았다는 평을 받았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사마방목(司馬榜目)』
- 『모재집(慕齋集)』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전고대방(典故大方)』
- 『기묘록(己卯錄)』
- 『해동잡록(海東雜錄)』
- 『기묘록보유(己卯錄補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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