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현(琄). 자는 국보(國寶). 예종의 둘째아들이며, 어머니는 안순왕후 한씨(安順王后韓氏)이다. 4세 때 부왕인 예종이 죽자, 왕위계승의 제1후보자였으나 세조비인 정희왕후(貞熹王后)가 아직 어리고 총명하지 못하다고 반대하여 대신 성종이 예종을 이어 왕위에 즉위하였다.
1470년(성종 1) 5세의 나이로 제안대군에 봉해져 녹봉(祿俸)과 직전(職田)을 지급받았으며, 후일 세종의 제 5자인 평원대군 임(平原大君琳)의 후사로 입양되었다.
12세에 사도시정(司䆃寺正) 김수말(金守末)의 딸과 혼인하였으나 어머니 안순왕후에 의하여 내쫓긴 바 되어, 14세에 다시 박중선(朴仲善)의 딸과 혼인하였지만 김씨를 끝내 못잊어하자 1485년 성종이 복합(復合)을 허락하였다.
1498년(연산군 4) 안순왕후의 상을 입은 뒤부터는 홀로 거처하였으며, 평생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았고, 다만 성악(聲樂)을 즐기고 사죽관현(絲竹管絃)을 연주하기를 좋아하였다. 그래서 연산군이 네 차례나 음률(音律)을 아는 여자를 궁중으로 맞아들여 그에게 내렸으나 따르지 않았다.
『패관잡기(稗官雜記)』에는 그를 평하여 “성품이 어리석다.”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진실로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몸을 보전하기 위하여 스스로를 감춘 것”이라는 또다른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는 결국 왕위계승을 둘러싼 왕실세력과 훈신(勳臣)의 각축 속에서 희생된 인물이었다.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