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유적은 북쪽에서 흘러 내려오는 남한강이 동북에서 남북방향으로 바뀌는 지점에서 국도변으로 70m 정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계산리의 고분들은 봉분이 거의 유실되어 있고 원형의 일부 호석만이 원상태대로 노출되어 있는 3기가 발견되었다. 봉분의 중심부로 추정되는 지점은 주위의 높이보다 약 1.5m 가량 높았고, 그 지름은 약 7m 정도로서 원형고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제1호분의 환석은 전체 고분의 약 반 정도를 원형태로 보여주어 이 고분이 지름 9.3m의 대형 호석으로 둘러놓은 고분임을 알 수 있었다. 제1호분은 냇돌로 원형의 기반을 형성하고 그 위에 점토를 다져넣은 뒤 묘곽을 설치한 대규모의 고분으로 남한강 지역의 대표적인 삼국시대 고분이었다. 그러나 유물이나 기타 구조를 알 수 있는 발견물은 없었다.
제2호분은 산돌을 이용하여 축조한 지름 6m의 고분으로, 냇돌을 이용하여 바닥을 까는 방법과 묘곽을 지하가 아니라 적석상으로 지상에 형성한 적석 위에 설치하였던 점과 유구내에서 발견된 고구려계 회백색 토기편들로 보아 고구려적 기반이 상당히 남아 있는 파괴분이다.
제3호분은 세개의 고분 중 제일 나중에 축조된 고분으로, 지름 6.6m의 원을 이루는 탄석을 축조한 뒤에 그 중앙 내부 전역에 냇돌과 산돌을 깔아 기단을 형성하였다.
제3호분에서도 삼국시대 토기편과 신라토기편, 조선도자기와 질그릇편들이 수습되었고 다른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이 고분은 삼국시대의 것들이며, 고구려계 문화와 연관이 있는 유적으로 판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