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의 석실분·석곽분과 조선시대의 토광묘가 밀집되어 있다. 이 지역에서 발굴된 고분은 신라시대 석실분 5기, 석곽분 14기, 조선시대의 토광묘 100기가 있었다.
신라시대 석실분·석곽분들은 모두 6세기 말 7세기 초에 걸친 고분들이다. 이 고분들의 장축방향은 주로 남북방향이며 머리방향은 북침을 하고 있었다. 출토유물들은 주로 토기들이며 무기류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 특히, 석실분에서는 금동관이 출토되어 주목되었다.
토기들은 고배류·완류·호류·단지류 등이며 그 중에서도 고배류의 출토 빈도수가 월등히 많았다. 이 토기들의 특징은 형태상으로 신라양식을 띠고 있지만 제작기법상으로는 백제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어 신라통치 하의 백제계 주민이 토기를 제작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고분의 구조와 유물상으로 볼 때, 이 고분들은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령한 후에 점령지에 대한 지배방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이다. 문헌사료로는 밝힐 수 없었던 신라의 한강유역 점령 후의 통치방식을 이 자료의 발견으로 규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신라의 점령지에 대한 지배방식은 점령지인 백제계 토착세력을 회유하여 직접 또는 토착호족에게 금동관을 하사함으로써 그 지역을 다스리게 하고, 그 유력한 토착세력 집단은 중앙정부에 대해 충성을 맹약하는 관계로 어느 정도 자치권을 부여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이 고분들이 가지는 중요한 성격 중의 하나이다.
조선시대 토광묘는 주로 16세기에 해당하는 분묘이다. 장축방향은 석실분과는 달리, 동서방향을 띠고 있으며, 유물은 백자대접·백자접시·토기병·청동제 숟가락 등이 출토되었다.
토기 중 단지에서는 고려시대 단지로 볼 수 있는 것이 많이 출토되어 조선시대 토기에 대한 재검토를 요하게 한다. 따라서 이 조선시대 고분군은 조선시대의 토기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2019년에 파주시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