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유적은 충주에서 동남방향으로 24㎞ 거리에 있는 남한강변의 강안단구인 동경 128°04′09″, 북위 36°57′24″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사 면적은 약 1,983㎡(600평)이다. 1983년과 1984년 2년에 걸쳐 충주댐 수몰지구 문화유적조사의 일환으로 건국대학교에서 발굴 조사하였다.
두 지구의 지층 형성과정은 조금씩 다르다. 1차 년도에 발굴된 제1지구의 경우는 표토층을 포함하여 8개층이 조사되었고, 2차년도에 발굴된 제2지구는 4개층이 조사되었다. 이 지층에서 구석기문화층은 각각 2지층과 3지층에 위치하고 있는데 모두 황갈색 고운사질점토이다.
이 유적의 출토석기는 대부분 1지구에서 발견된 것이고, 2지구에서는 1지구보다 2배 넓은 면적을 조사하였으나 발견된 유적은 10여 점에 불과하다. 유적의 층위는 경작토(Ⅰ층, 46∼55㎝), 그 밑으로 황갈색 고운사질 점토층(Ⅱ층, 41∼46㎝, 구석기시대 문화층), 황적색 점토층(Ⅲ층, 36∼64㎝), 흑갈색 점토층(Ⅳ층, 120∼124㎝), 적황색 고운모래층 (Ⅴ층, 96∼128㎝), 대역석층(大礫石層, Ⅵ층, 25∼40㎝), 황적색 점토섞인 소역석층(小礫石層, Ⅶ층, 161∼173㎝), 검은진흙섞인 중역석층(中礫石層, Ⅷ층, 33∼34㎝)으로 형성되어 있었으며, 유물은 Ⅱ층에서만 출토되었다.
이 유적에서는 출토유물 451점 가운데 석기가 163점(36%) 출토되었다. 석재는 석영암과 점판암을 위주이고 소량의 맥석영(脈石英)ㆍ규암(珪岩)ㆍ천매암(千枚岩) 등이다. 출토된 유물 가운데 비교적 큰 석기로는 주먹도끼(biface), 클리버(cleaver), 뾰족끝찍개(pick), 단면기 등이 있으며, 소형 석기로는 긁개류, 톱니날 석기(denticulate), 뾰족개(point), 새기개(burin), 송곳(owl) 등이 있다.
석기는 크게 몸돌[石核] 석기와 격지[石片] 석기로 나눌 수 있다. 몸돌석기는 주먹도끼 5점, 찍개 4점, 안팎날찍개 4점, 몸돌(르발루와식 포함) 10점 등이다. 격지석기는 주먹괭이 1점, 자르개 6점, 긁개 79점, 톱니날석기 3점, 홈날석기 3점, 칼 2점, 찌르개 14점, 새기개 7점, 송곳 11점 등이다. 몸돌석기의 수량이 격지석기에 비해 상당히 적다. 격지석기에는 긁개가 79점으로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석기 중에 주먹도끼는 아슐리안 마지막 시기 또는 미코니안시기에 출토되는 유형이다. 몸돌 1점과 주먹괭이 1점 및 작은 도끼 1점은 르발루와 타격수법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것이다. 한편, 찌르개 중에 대형 2점은 중국 딩춘[丁村] 유적 출토의 것들과 매우 유사하다. 그 밖에 중기 구석기시대 유적에서 출토되는 홈날석기·톱니날석기가 있고, 후기 구석기시대 유적에 흔한 송곳과 새기개 등도 있다.
명오리에서 출토된 석기는 그 유형과 제작기술에서 전곡리의 석기에 상당히 접근되고 있다. 그러나 전곡리 유적에서 출토되는 사냥돌이 명오리 유적에서는 1점도 출토되지 않고 있으며, 명오리의 톱니날석기와 밀개에서 보이는 2차 가공수법은 전곡리의 석기에서 보이는 수법보다는 대단히 정교하다.
명오리유적의 석기 유형은 전곡리와 상당히 접근하고 있는 데 비해 전곡리에서 출토된 대형의 석기가 결여된 상태이다. 다만 톱니석기와 끝날긁개(밀개)에서 나타난 제2차 가공이 대단히 정교하고 기형이 작은 것이다. 따라서 명오리 구석기문화는 전곡리 구석기문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여겨지나 그 시기는 전곡리보다는 조금 늦은 것으로 생각된다. 결국, 이러한 석기의 특징들은 중기 구석기시대인 약 5만∼4만년 전으로 편년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