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하고 있는 오라동 고인돌과 함께 1959년 서울대학교 김철준(金哲埈)에 의하여 발견된 것으로, 오라동의 것과 형태가 비슷하고 석재도 현무암을 사용하여 축조한 것이다.
1호 고인돌의 경우 외형은 남방식으로 대구광역시 대봉동 제1구 제2호와 제2구 제1호 고인돌과 비슷하다. 그러나 뚜껑돌[蓋石] 밑에 수매의 판석(板石)을 둘러 석실을 만든 것은 형식상 남방식보다 개석식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유문암(流紋岩)으로 만들어진 돌도끼[石斧]와 인골편이 발견되었는데, 인골에 대해서는 자세한 보고가 없다. 이밖에 2·3·4호로 이름지어진 3기의 고인돌이 더 발견되었는데 형태상 모두 차이가 없다.
이들은 조사 전에 모두 도굴되어 별다른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연대는 오라동의 것과 비교해볼 때 형태나 구조가 비슷한 고인돌 형식의 말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한국고고학 편년상 청동기시대 후기 또는 초기 철기시대로 추정된다. → 지석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