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등은 급찬(級飡)이다. 부산현령(夫山縣令)으로 있다가 백제에 잡혀가 좌평(佐平) 임자(任子)의 집 종이 되었다. 부지런히 일하므로 임자가 믿어 의심하지 않고 마음대로 드나들게 하였더니, 신라로 도망하여 김유신(金庾信)에게 백제의 사정을 고하였다.
김유신이 그가 충성스럽고 정직하여 쓸만한 자임을 알고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임자가 백제의 정치를 전결한다고 하니, 함께 일을 꾀하고자 하나 그런 말을 가서 해줄 사람을 구하기가 어렵다. 자네가 가서 말을 해주지 않겠는가?” 하니 조미압이 다시 백제로 가서 임자에게 조용히 김유신의 뜻을 전하였다.
임자는 아무 말없이 몇 달을 지내고서 조미압으로 하여금 김유신에게 돌아가서 백제는 군인들이 사치하고 음일하여 국사(國事)를 돌보지 않아 백성의 원망이 자자하고 신령(神靈)이 노하여 재변(災變)이 여러 번 나타나고 있다는 당시 백제의 실정을 상세히 보고하게 하였다.
이에 김유신은 백제를 병탄(倂呑)할 생각이 더욱 급하여, 드디어 655년(태종무열왕 2) 9월 백제의 왕이 무도하여 그 죄가 걸주(桀紂)보다 더하니 참으로 하늘의 뜻에 따라 백성을 조문하고 죄를 쳐야 한다고 무열왕에게 고하고, 도비천성(刀比川城)을 쳐서 함락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