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빈지(贇之). 조완(趙琬)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유(趙瑠)이고, 아버지는 조수창(趙壽昌)이며, 어머니는 박흔(朴昕)의 딸이다.
1498년(연산군 4) 생원으로서 선릉(宣陵 : 성종의 능) 옆에 사찰을 짓는 것이 부당하다고 상소하였다. 1506년(연산군 12) 별시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정언이 되고 헌납 · 전한 등을 거쳤다.
1515년 장악원정을 겸하고, 1520년 대사간에 승진하여, 그해 9월에 상소하여 신진들이 붕당을 지어 자기들과 취향이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는 폐단을 논박하였다. 1523년 강원도관찰사로 나갔고, 다음해 돌아와 동부승지가 되었으며, 1525년 형조참의를 지낸 뒤 이듬해 부제학 · 좌승지를 역임하였다.
1528년 예조참판 및 전라도관찰사를 지냈고, 1529년 12월 사헌부 대사헌이 되었다. 1530년 5월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1530년 12월 심정(沈貞)의 일당으로 몰려 공조참판의 지위에서 파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