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전기 세종~세조 대 병조참판, 황해도관찰사, 개성부 유수, 지중추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가계 및 인적 사항
주요 활동
대간(臺諫)으로 있으면서 양녕대군(讓寧大君)을 멀리해야 한다는 취지의 상소를 자주 올렸다. 1427년 인사 관련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아 관련자들과 함께 파직되었다. 이후 사헌부 집의와 승정원 승지에 제수되었다. 1449년 병조 참판에 임명되었고, 다음 해에는 명나라에 사은사(謝恩使)로 파견되어 세자의 면복(冕服) 등을 요청하였다.
[문종](E001966) 즉위 후에는 황해도관찰사, 경창(慶昌) [부윤(府尹)](E002453), 형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단종 대에는 개성부(開城府) 유수(留守), 세조 대에는 중추원(中樞院) 부사(副使), 함길도관찰사,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등에 임명되었다. 검소하면서도 사대부의 풍모를 잘 지켰던 인물로 평가되었다. 1457년(세조 3) 죽었다. 시호는 평숙(平肅)이다.
참고문헌
원전
- 『국조방목(國朝榜目)』
- 『단종실록(端宗實錄)』
- 『문종실록(文宗實錄)』
- 『세조실록(世祖實錄)』
- 『태종실록(太宗實錄)』
주석
-
주1
: 훈공을 장부나 문서에 기록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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