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 후기, 도첨의정승·우정승 등을 역임한 문신.
가계 및 인적사항
주요 활동
1331년(충혜왕 원년) 충혜왕(忠惠王)이 즉위하여 감찰대부(監察大夫)로 임명하였다. 이후 충정왕(忠定王)이 폐위되고 공민왕(恭愍王)이 즉위하자, 8월에 구신훈로(舊臣勳老)로서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판전리사(判典理事)로 임명되어 수상(首相)으로서 행정을 맡아보게 되었다. 이때는 기철(奇轍) 일가의 득세기(得勢期)로 이를 견제하기 위한 시종공신(侍從功臣) 조일신(趙日新) 계의 세력, 왕이 부임하기 전 섭정권단(攝政權斷) 정동성사(征東省事)로 대행권을 장악한 이제현(李齊賢) 계의 3파 세력이 각축전을 벌이게 되었다.
1352년(공민왕 1) 3월에서 10월에 걸쳐 조일신이 기철 일가를 숙청하고 이제현을 견제하여 은퇴시키고, 9월에 판삼사사(判三司事)로 실권을 장악하였다. 10월 1일에는 조일신이 자신의 반란을 획책하여 추종세력이었던 좌정승(左政丞) 정천기(鄭天起)·찬성사(贊成事) 최화상(崔和尙)·판삼사사(判三司事) 이권(李權)·판밀직(判密直) 나영(羅英) 등을 거꾸로 숙청하고, 도당에 죄를 뒤집어 씌우고 인사를 자신의 뜻대로 하여 송서를 우정승(右政丞)으로, 자기는 좌정승 판군부감찰사(判軍簿監察事)가 되었다. 공민왕이 조일신을 죽인 이후 이듬해 2월에 여량부원군(礪良府院君)으로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여산송씨족보(礪山宋氏族譜)』
논문
- 민현구, 「고려 공민왕의 반원적 개혁정치에 대한 일고찰: 배경과 발단」 (『진단학보』 68, 진단학회,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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