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상장군(上將軍)을 지낸 송염(宋琰)이다.
송방영이 관리가 된 과정에 관해서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없고, 『고려사(高麗史)』 등 기록에서 관직이 장군(將軍)부터 확인되어 무신(武臣)에서 성장한 인물로 보인다. 1298년(충렬왕 24) 장군으로 하정사(賀正使)가 되어 원(元)나라에 다녀왔다.
1300년(충렬왕 26) 충렬왕(忠烈王)이 원나라에 입조(入朝)하였을 때 대장군(大將軍)으로 동행하였고, 왕이 양 200마리와 술 200통을 황제에게 헌납하였다. 충렬왕이 대궐로 나아가 부두연(扶頭宴)을 베풀었을 때 황제가 고려의 노래를 부르라고 명령하였다. 왕이 대장군 송방영과 송영(宋英) 등에게 쌍연곡(雙鷰曲)을 부르게 하였다. 충선왕(忠宣王)은 단판(檀板)을 잡고 왕이 일어나 춤추면서 황제의 장수를 비니, 황제와 황후(皇后)가 기뻐하였다고 한다. 돌아온 이후 좌부승지(左副承旨)가 되었다가 1301년(충렬왕 27)에 좌승지(左承旨)가 되었다.
1303년(충렬왕 29)에 밀직부사(密直副使)로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원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전왕(前王)인 충선왕의 귀국을 방해한 죄로 원나라에 압송되었다가 그해 8월에 귀국하였으며, 12월에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로 다시 하정사가 되어 원나라에 다녀왔다.
1305년(충렬왕 31)에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가 되었는데, 그해 충렬왕이 원나라에 가고자 하므로 따라가려고 하였으나 조적(曺頔)이 왕에게 말하기를, “상국(上國)에게 죄를 지었으니 마땅히 호종할 수 없습니다.”라고 함으로 허락되지 않았다. 의주(義州)까지 따라가 함께 가기를 청하였는데, 따로 간다는 조건 아래 허락받아 원나라에 가게 되었다. 그러나 1307년(충렬왕 33) 충선왕이 권력을 장악한 이후 충선왕의 귀국을 방해하고 그의 왕비 계국대장공주(薊國大長公主)를 서흥후(瑞興侯) 왕전(王琠)에게 개가(改嫁)시키려고 한 죄로 서흥후 왕전 및 왕유소(王維紹)· 한신(韓愼)· 송린(宋璘)· 송균(宋均)· 김충의(金忠義)· 최연(崔涓) 등과 함께 원나라의 국도(國都)인 대도(大都: 현재의 베이징)에서 참형(斬刑)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