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찬성사를 지낸 왕연(王昖)이다.
충렬왕 초에 낭장이 되었으며, 왕을 호종하여 원나라에 다녀왔다. 1302년(충렬왕 28) 밀직부사가 되었으며 뒤이어 좌상시(左常侍)가 되었다.
1305년 지도첨의사사(知都僉議司事)가 되었고, 그해 원나라에 가서 동녀(童女) 10인을 바쳤다. 그해 찬성사가 되었으며, 천수절사(天壽節使)로 원나라에 다녀왔다. 또, 그해 왕이 원나라에 가므로 한희유(韓希愈) 등과 함께 호종하였다.
이때 원나라에 있던 충선왕과 충렬왕 부자를 이간시키고, 충선왕과 불화중인 왕비 보탑공주(寶塔公主)를 독로화(禿魯花: 볼모)로 원나라에 있던 서흥후(瑞興侯) 왕전(王琠)에게 개가시켜 왕전을 옹립하려 하였다.
그러나 최유엄(崔有渰) 등의 탄핵으로 원나라 중서성(中書省)에 잡혀 있다가 1307년 충렬왕을 경수사(慶壽寺)로 옮기고 실권을 잡은 충선왕에 의하여 서흥후·송방영(宋邦英)·송린(宋燐)·한신(韓愼)·송균(宋均)·김충의(金忠義)·최연(崔涓) 등과 함께 주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