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3년(충렬왕 19) 낭장(郎將)으로 원나라에 가서 충렬왕(忠烈王)의 친조(親朝)를 청하였다. 1295년에도 중랑장(中郎將)으로 원나라에 가서 요양(遼陽)에 보낼 식량을 줄여줄 것을 청하였다. 1309년(충선왕 1) 대장군(大將軍)으로 삼사우사(三司右使)가 되었고, 그 이듬해 검교평리(檢校評理)를 거쳐 제주목사(濟州牧使)가 되었다.
1318년(충숙왕 5)에 제주에서 사용(使用)·김성(金成) 등이 무리를 모아 반란을 일으키고, 성주(星主: 제주목사)와 왕자(王子)를 내쫓고 “만약 이백겸(李伯謙)이나 송영(宋英)이 와서 다스린다면 우리들이 어찌 감히 반(叛)하리요.”하므로, 송영은 검교평리로서 이백겸과 함께 나가 안무(安撫)하게 되었다. 그런데 도착하기도 전에 두목을 죽이고 항복하므로 그들이 바라는대로 제주에 머물며 목사가 되었다. 그 해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가 되었고, 뒤이어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로 치사(致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