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합덕(合德)의 관노(官奴) 출신으로, 내료(內僚: 궁중에서 잡무에 종사하는 벼슬아치)가 되어 충렬왕(忠烈王)의 총애를 받았으며 벼슬은 호군(護軍)에 이르렀다. 한때 역시 내료인 석주(石胄)와 왕의 총애를 다투다가 석주의 모함으로 다시 관노가 되기도 하였지만, 머리를 깎고 원나라로 도망하여 환관(宦官) 이숙(李淑)에게 의탁함으로써 그의 도움을 받아 복직되었다.
그 뒤 다시 충렬왕의 총애를 받았는데, 1304년(충렬왕 30)에는 당시 원나라에 있던 충선왕(忠宣王)의 귀국을 저지하려다 발각되어 순군옥(巡軍獄)에 갇혔으나 곧 왕명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같은 해 백백(佰佰) 등 원나라 사신들에 의하여 행성옥(行省獄)에 수감되었다가, 곧 원나라로 압송되었다. 그 뒤 충렬왕과 충선왕의 대립에서 줄곧 충렬왕의 편에 섰으며, 이 때문에 1307년 충선왕이 원나라에서 무종(武宗)을 옹립하고 실권을 장악한 직후에 주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