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우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경상도관찰사, 공조참판,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시호문정(文靖)
  • 연암(烟巖)
  • 치용(稚用)
인물/전통 인물
  • 본관창녕(昌寧)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공조참판|이조판서
  • 출생 연도1810년(순조 10)
  • 출생지서울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호종 (안동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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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경상도관찰사, 공조참판,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치용(稚用), 호는 연암(烟巖). 서울 출생. 조명준(曺命峻)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윤대(曺允大)이고, 아버지는 조용진(曺龍振)이며, 어머니는 신작(申綽)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35년(헌종 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역임하다가, 1852년(철종 3) 이조참판에 올랐다. 이듬해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하여 지방을 다스리면서, 1854년 고조부 하망(夏望)의 문집인 『서주집(西州集)』을 간행하였는데, 그 가운데 윤증(尹拯)에 대한 제문 속에서 송시열(宋時烈)을 비난한 글을 삭제한 것이 말썽을 빚어 유생의 줄기찬 항의로 파직당하여 중화에 유배되었다.

그러나 1857년 석방되어 공조참판에 올랐으며, 그 뒤 1867년 이조판서가 되었다. 글씨에 뛰어나 일가를 이룰 정도였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참고문헌

  • - 『철종실록(哲宗實錄)』

  • - 『일성록(日省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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