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35년 서울에서 조직된 친일 단체.
개설
조직구성
연원 및 변천
총독 이하 요인과 전조선 교화사업 관계자 300명이 참가했던 간담회로서, 1923년 11월 10일에 발포된 「국민정신 작흥(作興)에 관한 조서(詔書)」의 취지를 철저히 하기 위해, 종래 도훈령(道訓令) 등으로 추진되어 온 민풍함양운동(民風涵養運動)을 획기적인 방향에서 개척하자는 게 목적이었다.
이 간담회에서 또 황도사상과 일본 신앙심을 고취하기 위한 몇 가지 교화 원칙과, 그것을 수행할 교화단체 연맹기관의 설립을 결의하였다. 그리고 이 ‘연맹기관’으로 탄생된 것이 각도의 교화단체연합회 및 그 중앙조직인 조선교화단체연합회였다.
1932년 11월 10일, 총독 우가키(宇垣一成)는 정신작흥 · 자력갱생의 전국 농 · 산 · 어촌진흥운동의 시작을 선포하면서, 충군애국(忠君愛國) 등 6개조의 실행 강목을 발표하였다.
또한 경성부는 11월 10∼14일 5일간을 ‘경성부 민풍작흥운동일’로 정하면서 11항목의 「민풍작흥운동강령」을 발표했다.
황도사상과 일본 신앙심을 널리 알리는 데에 그 목적을 둔 정신 작흥 · 민풍함양운동의 실천기관으로 탄생한 ‘교화단체 연맹기관’이 1933년 2월 25일에 결성된 경성교화단체연합회이다.
경성부윤을 회장, 경성연합청년단장 마에다와 경성보육원장 오긍선을 부회장으로, 이강혁(李康爀) · 예종석(芮宗錫) 등 경성 지역 방면위원과 조일종교단체 대표자 21명이 이사로 참가하였다.
이후 같은 해 12월 서울의 교화사업 관계자와 서장 · 학교장 · 정총대(町總代) 및 교화위원 후보자 200여 명이 참석한 ‘경성교화망(京城敎化網)설정간담회’에서 서울 일원은 5개의 교화구(敎化區)로 나누고, 각 교화구 교화위원 합계 207명이 결정된다.
이후 지방 교화단체들이 도 교화단체 연합회에 가맹, 1935년 10월 3일 상위 중앙조직인 조선교화단체연합회를 출현시켰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월간조선사회사업(月刊朝鮮社會事業)』(조선사회사업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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