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군사후원연맹

  • 역사
  • 단체
  • 일제강점기
1937년 서울에서 조직된 친일 단체.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임종국 (문학평론가)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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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37년 서울에서 조직된 친일 단체.

내용

일제 말기의 전시 협력 조직으로 “황군의 후원이 되어 서로 협력하여 군인의 사기를 고취 격려하고, 군인으로 후고(後顧)의 우려 없이 본분을 다하게 함.”을 강령으로 삼았다.

실천 사업으로 ① 군인 원호 사상의 보급, ② 상이·출전 군인의 가족 원호, ③ 위에 대한 직업 알선, ④ 출전·귀향 군인에 대한 송영(送迎)·접대, ⑤ 출전 장병 및 가족에 대한 위문·격려, ⑥ 군인 유가족의 조(弔)·위문, ⑦ 위의 사업을 위한 모금 등을 꼽았다.

조직은 본부 중앙조직인 조선군사후원연맹과, 지방조직인 지부(支部)·분회(分會)로 나누어졌다. 중앙조직은 사무소를 총독부 내무국 시회과 안에 두며, 정무총감을 회장, 총독부 내무국장 및 회장이 위촉한 평의원 중의 1명을 부회장으로 삼았다.

연맹은 “연맹의 취지에 찬동하는 단체로써 조직”(규약 제1조)되는데, 창설 당시 조·일 23개 단체가 가맹했으며, 그 뒤 계속 증가하였다. 평의원은 가맹 단체 관계자 중에서 회장이 위촉하였다.

13도에 1지부씩을 두되, ‘○○도 군사후원연맹’으로 호칭하였다. 지부장은 도지사, 부지부장은 내무부장과 도회(道會) 부의장이 각각 맡았으며, 가맹단체 관계자가 평의원이 되었다. 분회조직은 부(府)·군(郡)·도(島)에 두되 ‘○○부(또는 군·도) 군사후원연맹’으로 호칭, 지부조직에 준하는 구성이었다.

창립 후 1938년 말까지 17개월 동안 군인 송영·접대 1만 4,399회, 현지 위문 4,273회, 상병(傷病)군인 위문 2,497회, 군인가족위안회 개최 829회를 실시했으며, 기타 위문금·부조금·생계보조금·생업자금 등을 지급하였다. 위 비용은 1938년 당시 국고 보조 19만 486원과 일반 헌금·기부금 80만 원 등 합계 115만 원으로 충당되었다(동년도 평균 곡가는 도매 16원80전).

이 단체에는 경성군사후원연맹의 김명준(金明濬)·박영철(朴榮喆)·예종석(芮宗錫)·오긍선(吳兢善)·이홍종(李弘鍾)·정구충(鄭求忠), 기타 다수의 조선인이 정·부회장과 평의원 등으로 참가하였다. 1941년 7월 31일, 재단법인 군인원호회 조선지부에 통합되었다.

참고문헌

  • - 『軍事後援聯盟事業要覽』(朝鮮軍事後援聯盟,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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