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37년 서울에서 조직된 친일 단체.
내용
실천 사업으로 ① 군인 원호 사상의 보급, ② 상이·출전 군인의 가족 원호, ③ 위에 대한 직업 알선, ④ 출전·귀향 군인에 대한 송영(送迎)·접대, ⑤ 출전 장병 및 가족에 대한 위문·격려, ⑥ 군인 유가족의 조(弔)·위문, ⑦ 위의 사업을 위한 모금 등을 꼽았다.
조직은 본부 중앙조직인 조선군사후원연맹과, 지방조직인 지부(支部)·분회(分會)로 나누어졌다. 중앙조직은 사무소를 총독부 내무국 시회과 안에 두며, 정무총감을 회장, 총독부 내무국장 및 회장이 위촉한 평의원 중의 1명을 부회장으로 삼았다.
연맹은 “연맹의 취지에 찬동하는 단체로써 조직”(규약 제1조)되는데, 창설 당시 조·일 23개 단체가 가맹했으며, 그 뒤 계속 증가하였다. 평의원은 가맹 단체 관계자 중에서 회장이 위촉하였다.
13도에 1지부씩을 두되, ‘○○도 군사후원연맹’으로 호칭하였다. 지부장은 도지사, 부지부장은 내무부장과 도회(道會) 부의장이 각각 맡았으며, 가맹단체 관계자가 평의원이 되었다. 분회조직은 부(府)·군(郡)·도(島)에 두되 ‘○○부(또는 군·도) 군사후원연맹’으로 호칭, 지부조직에 준하는 구성이었다.
창립 후 1938년 말까지 17개월 동안 군인 송영·접대 1만 4,399회, 현지 위문 4,273회, 상병(傷病)군인 위문 2,497회, 군인가족위안회 개최 829회를 실시했으며, 기타 위문금·부조금·생계보조금·생업자금 등을 지급하였다. 위 비용은 1938년 당시 국고 보조 19만 486원과 일반 헌금·기부금 80만 원 등 합계 115만 원으로 충당되었다(동년도 평균 곡가는 도매 16원80전).
이 단체에는 경성군사후원연맹의 김명준(金明濬)·박영철(朴榮喆)·예종석(芮宗錫)·오긍선(吳兢善)·이홍종(李弘鍾)·정구충(鄭求忠), 기타 다수의 조선인이 정·부회장과 평의원 등으로 참가하였다. 1941년 7월 31일, 재단법인 군인원호회 조선지부에 통합되었다.
참고문헌
- 『軍事後援聯盟事業要覽』(朝鮮軍事後援聯盟,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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