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조선일보≫ 7월 28일부터 8월 16일까지 총 15회에 걸쳐 연재되었다. 실제 횟수는 6회가 두 번, 8회가 두 번으로 17회가 연재된 셈이다. ≪춘원연구 春園硏究≫와 더불어 동인의 문학관을 잘 드러내주는 대표적인 비평문이다. 전체적으로 크게 ‘귀의 성(鬼―聲)’·‘춘원(春園)’·‘나와 소설’이라는 세 개의 소제목으로 구분되어 있다.
내용을 세분해보면 (1)∼(4)까지는 이인직(李人稙), (5)∼(7)까지는 춘원, (8)∼(11)까지는 ≪창조 創造≫의 동인들과 염상섭(廉想涉)·나도향(羅稻香)·현진건(玄鎭健)·전영택(田榮澤)·최서해(崔曙海)에 대하여, 그리고 나머지 부분에서는 자신의 작품 생활과 심경고백을 싣고 있다. 첫 장에서는 이인직의 <귀의 성>을 분석하였는데, 이 작품을 근대소설의 원조로 보면서 구소설의 선악의 양분법을 극복한 최초의 소설이라고 극찬하였다.
즉, 성격묘사의 다양성, 실감 있는 대화법과 묘사력, 냉정한 붓끝, 조선적인 특유의 성격 등을 들어 심리묘사와 성격묘사에 뛰어난 작가임을 강조하였다. ‘춘원’에서는 이광수(李光洙)의 문학을 비평하였는데, 먼저 모든 재래의 것에 반역적 선언을 한 돈키호테, 특히 자유연애 문제의 선각자라는 칭호로 춘원을 올려놓았다.
그러나 곧 재래의 권선징악과 춘원 문학의 권선징악에는 차이가 없다고 그의 계몽주의적 경향을 비판하였다. 특히, <무정 無情>과 <개척자>에서 이념의 제시와 구조상의 모순이 있음을 지적하였는데, 여기에서 동인(東仁)의 자연주의 및 사실주의 문학정신과 춘원의 계몽적 문학관과의 뚜렷한 차이가 드러난다.
(8)∼(11)까지는 주로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에 관하여 과도기의 청년이 받는 불안·공포와 번민을 잘 파악하고 묘사하였음을 들어 염상섭을 러시아적 ‘침울’과 ‘번민’을 보여준 작가로 취급하였다. 아울러 현진건은 비상한 기교의 천재로서 그의 문예적 특질을 지적하고 나도향의 이른 죽음과 그 재능의 미숙을 말하였으며, 또한 전영택(田榮澤)의 간결한 묘사법과 인도주의 사상을 긍정하였다.
한편, 최서해의 빈곤문학의 주제에 언급, 독서계에 충격을 준 문제성이 있음을 지적하였으나, 기교의 미숙성도 간단히 논하면서 자신과 ≪창조≫ 동인의 업적을 자찬하고 있다. 특히, 문체의 확립을 중요하게 보고, 춘원의 문장과 비교하여 자신이 이룩한 구어체 문장 및 일원묘사(一元描寫 : 작중의 한 사람의 눈을 통하여 본 세계를 그리는 소설의 한 형식)를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이 비평문은 주로 기법을 중심으로 한 형식주의적인 안목에 입각하고 있다. 이인직의 「귀의 성」, 춘원·상섭에 대한 비판은 매우 정확하다. 그러나 형식이나 기법 이상의 것에 대한 인식의 결핍, 자신의 문학적 공로에 대한 과장 때문에 춘원의 문체 업적을 과소평가한 것 등,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인상주의적인 한계를 보여준다.
그렇지만 대체로 이 비평문은 이전까지의 계몽주의적 문학관에서 탈피하여 문학의 예술적 가치에 눈을 돌렸다는 점에서 비평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신소설로부터 이광수 등을 거쳐 동인 자신에 이르기까지 한국 소설의 흐름을 작가 중심으로 서술하면서 필자 자신의 소설사적 공로를 과장한 점도 있으나 매우 날카롭고 직관적 통찰력이 뛰어난 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