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3·1운동 직후인 1919년 4월 9일 서울에서 일제고등경찰이 압수한 이른바 불온문서에 나타난 것으로, 여기에는 「조선민국임시정부조직포고문」과 전문 33조로 된 「조선민국임시정부창립장정」이 게재되어 있다.
이 정부 역시 당시의 다른 임시정부와 마찬가지로 민주적 정부형태인 국민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바, 주동인물은 천도교인 박이근(朴理根)·허익환(許益煥)과 권희목(權熙穆)·이임수(李林洙)였다.
그리고 정도령(正都領) 손병희(孫秉熙)의 명의로 된 도령부령(都領府令) 제1·2호로 내각명단과 파리만국국제연맹회의에 참석할 외교위원 명단을 4월 10일자로 발표한바 그 명단은 다음과 같다.
정도령 손병희, 부도령 겸 내각총무경 이승만(李承晩), 외무경 민찬호(閔瓚鎬), 내무경 김윤식(金允植), 군무경 노백린(盧伯麟), 재무경 이상(李相), 학무경 안창호(安昌浩), 법무경 윤익선(尹益善), 식산무경 오세창(吳世昌), 교통무경 조용은(趙鏞殷), 외교위원 이승만·민찬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