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조선정음부활회(朝鮮正音復活會)라는 명칭으로 이필수의 자택인 서울 동숭동에 두었다.
1923년에 그의 저서 『선문통해(鮮文通解)』(1922) 한글판 『정음문전(正音文典)』을 출판하고, 1925년에는 김중록(金重綠)과 『글에 대(對)한 문답(問答)』을 공간하였다.
『글에 대한 문답』은 1926년 한글판으로 재판, 1946년 3판, 1959년 4판에 해당하는 『국문강의』 유인본으로 각각 판을 거듭하였다.
이필수의 저서인 『국문강의』에 의하면, 그는 1923년에 이 회를 조직하고 서울과 대전·전주·광주·제주·영동·김천·마산·개성·재령 등 30개처를 순회하여 교수하며 동지를 규합하려 하였으나, 일제경찰의 단속으로 3년 뒤에 낙향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주장은 주로 한글자모를 현실발음과 일치하게 개혁하여 정자(正字)에 초서(草書)를 만들고 한글전용을 실시하고자 한 것이었다. 광복 후에도 1950년까지 주장하였으나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말았다. 이 회의 연혁에 관한 기록이 없어 더 자세한 것은 알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