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38년 중국 한커우(漢口)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개설
연원 및 변천
그러나 그 뒤 김원봉 측의 종용도 있고 재정 상의 어려움 때문에 다시 조선민족혁명당에 복귀하였다. 같은 해 9월 초순 조선민족청년전시복무단은 명칭을 조선청년전위동맹으로 고치고 활동하면서 조선혁명당이 중심이 된 민족통일전선인 조선민족전선연맹(朝鮮民族戰線聯盟)에 가맹하였다.
10월 10일에는 김원봉이 대장이 되어 개편된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의 핵심대원으로 활동하였다. 조선의용대 내의 이 동맹에 속한 좌파계 인물들은 화북조선독립동맹으로 가고 김원봉을 비롯한 일부 의용대원은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에 흡수되었다.
기능과 역할
그리하여 이 동맹은 조선민족혁명당 내에서도 차차 그 위치를 확고히 하여 무시못할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이 무렵의 이 동맹에는 뒤에 연안파 공산주의자로 항일전에 활약한 김학무(金學武)·이상조(李相朝)·김창만(金昌滿) 등이 있었다.
조선민족혁명당의 중요한 임무였던 항일전쟁에서 이 동맹은 정찰·선전공작 등에 종사하였다. 그리하여 1930년대 말에 우창(武昌)·한커우가 일본군에게 함락된 뒤에는 군사활동에 있어서 중요한 임무를 담당하였다.
당시의 이 동맹의 진용에는 맹주에 김학무, 맹원에 진동명·박무·강진세·김창만·김경설·허금산·이철·조명숙·김엽·공명우·안창선·박창진의 이름이 일제 관헌 측 문서에 전하고 있어 초창기의 중진들이 이미 이 동맹을 떠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일전쟁의 전황이 점차 중국 측에 불리해지면서 조선민족혁명당계의 인사들은 중국국민정부의 후퇴와 함께 충칭(重慶)으로 옮겨갔고 이 동맹의 좌파인사들은 뤄양(洛陽)을 거쳐 옌안으로 향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공산주의운동사(韓國共産主義運動史)』 4(김준엽·김창순, 고려대학교아세아문제연구소, 1973)
- 『나의 회억』(류자명, 료령인민출판사, 1984)
- 『國民政府與韓國獨立運動史料』(中央硏究院近代史硏究所, 1988)
- 「朝鮮義勇隊の成立と活動」(鹿嶋節子, 『朝鮮民族運動史硏究』 4, 1987)
- 「朝鮮獨立同盟の成立と活動について」(森川展昭, 『朝鮮民族獨立史硏究』 Ⅰ, 1984)
- 『朝鮮民族獨立運動秘史』(坪江汕二, 巖南堂書店, 1982)
- 『朝鮮獨立運動』 Ⅱ(金正明 編, 原書房, 1967)
- 『特高月報』(日本內務省警保局, 19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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