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2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군.
개설
설립목적
연원 및 변천
1929년 5월 국민부 중앙집행위원회가 구성된 이후 국민부 산하 정규군으로서 편제가 갖춰졌다. 7월 경 종래 정의부 부대를 바탕으로 참의부와 신민부 부대를 통합하여 재편하였다.
군사위원장 겸 사령관은 이준식[李俊植, 이칭: 이웅(李雄)], 제1중대장 양세봉[梁世奉, 瑞鳳, 호는 벽해(碧海)], 제2중대장 윤환(尹桓), 제3중대장 이태형(李泰馨), 제4중대장 김창헌(金昌憲), 제5중대장 장철호(張喆鎬), 제6중대장 안홍(安鴻), 제7중대장 차용목(車用睦), 제8중대장 김보국(金保國), 중앙호위대장 문시영(文時映) 등이 임명되었는데, 병력은 약 1만여 명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편제와 지휘체제는 일본군과 여러 차례 격전을 치르면서 개편을 거듭하였다. 같은 해 12월 군사위원회 총사령에 이진탁(李辰卓)이 임명되고, 부사령 양세봉, 참모장 이웅을 중심으로 하는 7개 중대가 편성되었고, 1930년 8월 다시 5개 중대로 개편하여 제1중대장 김보안(金輔安, 保安), 제2중대장 양세봉, 제3중대장 이윤환(李允煥), 제4중대장 김문거, 제5중대장 이종락(李鍾洛) 등이 임명되었다.
1920년대 후반부터 만주지역에선 공산주의운동이 확산되면서 조선혁명군 내부에서 좌우익 대립이 심화되었다. 1930년 8월 좌우파가 전면적으로 대립하며 유혈사태를 초래하기까지 하였다. 권력투쟁 끝에 좌파가 축출되어 그 결과 10월 하순 조선혁명당 군사위원장 현익철이 조선혁명군 총사령을 겸임하고 부대를 재정비하였다.
그 뒤 일본군 및 만주군 연합부대와 계속된 전투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여 1932년 초 전면적인 개편을 단행했다. 총사령관에 양세봉, 참모장에 김학규(金學奎)가 임명되었다. 그러나 1934년 9월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총사령 양세봉이 전사하자 김호석(金浩石)이 총사령에 임명되었다. 하지만 일본군 대부대의 본격적인 공격으로 세력은 점차 약화되었다.
이에 조선혁명군은 1935년 9월 반만(反滿) 항일군의 지도자 왕봉각(王鳳閣)과 중한항일동맹회(中韓抗日同盟會)를 결성하여 공동항일전선을 형성하여 세력을 만회하고자 했으나 1936년을 고비로 쇠퇴하였다.
기능과 역할
조선혁명군의 항일무장투쟁은 일본군과의 단독전투와 중국군과의 연합전투를 통해 항일무장투쟁사에 크게 공헌하였다. 특히 1929년 7월유하현(柳河縣) 추가보(鄒家堡) 전투와 1932년 1월양기하(梁基瑕)부대의 혈투 등은 대단하였다. 그리고 1932년 3월에서 7월에 걸친 흥경현(興京縣) 영릉가(永陵街)전투는 정규전을 벌여 일본군을 크게 무찌른 대승첩이었다. 당시 총사령 양세봉 병력 1만여 명은 중국의용군총사령 이춘윤(李春閏)의 병력 2만여 명과 연합전선을 펴서 일본·만주연합군에 크게 승리했다. 3월 초전에서 일본군 30여 명의 사상자를 내었으며, 5월과 7월에는 공군의 지원까지 받으며 일본의 대부대와 영릉가에서 접전하였는데, 당시 일본군에선 1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고등경찰요사(高等警察要史)』(경상북도경찰부(慶尙北道警察部), 1934)
- 『독립운동사자료집』10(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 『조선독립운동』Ⅲ(김정명, 원서방, 1967)
- 『한국독립운동사』(애국동지원호회, 1956)
- 『무장독립운동비사』(채근식, 대한민국공보처, 1949)
- 『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최형우, 동방문화사, 1945)
- 「조선혁명군」(장세윤, 『한국독립운동사사전』3, 2004)
- 「조선혁명군 연구」(장세윤, 『한국독립운동사연구』제4집, 1990)
- 『滿洲共産匪の硏究』(滿洲軍政府顧問部,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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