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양(平壤). 자는 백양(伯陽), 호는 양심당(養心堂). 조수함(趙守諴)의 아들이다.
1513년(중종 8) 생원에 합격하였고, 벼슬은 부사과를 거쳐 의영고영(義盈庫令)에 이르렀다. 율려(律呂)에 밝을 뿐 아니라 의약과 산수에도 정통하여 군직(軍職)에 나가서는 의술을 가르친 바도 있다.
조광조(趙光祖)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아 특히 성리학에 밝았으며, 필법에도 능하였다. 1551년(명종 6) 교정청을 설치하여 세종 때 박연이 만든 편종과 편경을 교정할 즈음 우참찬 안현(安玹)의 책임하에 조성으로 하여금 이정(釐正: 정리하여 바로잡아 고침)하게 하였다.
또한, 거문고의 명인으로서 이득윤(李得胤)의『고금금보문견록(古今琴譜聞見錄)』과 『송씨이수삼산재본금보(宋氏二水三山齋本琴譜)』에 「조성보(趙晟譜)」가 전한다. 지평의 운계서원(雲谿書院)에 제향되었으며, 저서로는 「양심당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