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유성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정언, 지평, 나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중실(仲實)
인물/전통 인물
  • 본관순창(淳昌)
  • 사망 연도1575년(선조 8)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나주목사
  • 출생 연도1526년(중종 2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종호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정언, 지평, 나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순창(淳昌). 자는 중실(仲實). 할아버지는 조여옥(趙汝玉)이고, 아버지는 조수억(趙壽億)이며, 어머니는 조구(趙球)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주자의 『가례』를 높여, 보는 자들이 감탄하였다. 1555년(명종 10)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고,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어 상의원직장·전적·직강·사예·사성·교열·교리 등을 거쳐, 호조·예조·형조·공조의 좌랑 및 봉상시판관·정언·헌납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사헌부감찰로 서장관이 되어 연경(燕京)에 갔을 때 심부름하는 자가 길에서 죽자 예로써 장사지내주고, 돌아와서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아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하였다. 1567년 정언을 거쳐 지평이 되었으며, 1573년(선조 6) 장령이 되었다.

외직으로는 장성현감·어천찰방(魚川察訪)·경상도도사·곤양군수·고부군수·나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대각(臺閣)에 있을 때 일을 논함에 흔들림이 없이 바른말로 직언하였다. 성품은 청렴하고 검소하여 몸차림이나 행동을 스스로 지키면서 가사에는 관심이 없었다.

참고문헌

  • - 『명종실록(明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제봉집(霽峯集)』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