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유성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정언, 지평, 나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중실(仲實)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26년(중종 21)
사망 연도
1575년(선조 8)
본관
순창(淳昌)
주요 관직
나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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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정언, 지평, 나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순창(淳昌). 자는 중실(仲實). 할아버지는 조여옥(趙汝玉)이고, 아버지는 조수억(趙壽億)이며, 어머니는 조구(趙球)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주자의 『가례』를 높여, 보는 자들이 감탄하였다. 1555년(명종 10)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고,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어 상의원직장·전적·직강·사예·사성·교열·교리 등을 거쳐, 호조·예조·형조·공조의 좌랑 및 봉상시판관·정언·헌납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사헌부감찰로 서장관이 되어 연경(燕京)에 갔을 때 심부름하는 자가 길에서 죽자 예로써 장사지내주고, 돌아와서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아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하였다. 1567년 정언을 거쳐 지평이 되었으며, 1573년(선조 6) 장령이 되었다.

외직으로는 장성현감·어천찰방(魚川察訪)·경상도도사·곤양군수·고부군수·나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대각(臺閣)에 있을 때 일을 논함에 흔들림이 없이 바른말로 직언하였다. 성품은 청렴하고 검소하여 몸차림이나 행동을 스스로 지키면서 가사에는 관심이 없었다.

참고문헌

『명종실록(明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제봉집(霽峯集)』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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