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1책. 석인본. 1940년 후손 경렬(敬烈)·복교(福敎)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손후익(孫厚翼)·이강호(李康鎬)의 서문이, 권말에 경렬의 발문이 있다.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권1에 부(賦) 2편, 시 137수, 소(疏) 2편, 정문(呈文) 3편, 서(書) 1편, 기(記) 2편, 권2에 부록으로 교서·내사병풍제명(內賜屛風題名)·시장(諡狀)·청시상언(請諡上言)·계(啓)·교지·가장·행장·묘지명·신도비명·사적(事蹟)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부 중 「분거부(焚車賦)」는 자기 일신을 수레에 비겨 지은 것으로, 하나의 좋은 수레가 있으나 낡고 헐어서 남에게 빌려줄 수도 없고 자기가 사용할 곳도 없기 때문에 불에 태워버린다고 쓸모없이 된 늙은 몸을 한탄하였다.
시에는 「북대(北臺)」·「응수정(凝秀亭)」·「취로정(翠路亭)」 등 명승에 관한 것이 많은데, 시각이 날카롭고 시상이 풍부하다. 또 「장홍(長虹)」·「액(液)」·「벽(碧)」·「필운(弼雲)」·「공극(拱極)」 등은 하늘의 오묘한 작용과 변화,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이다.
소의 「사한산군수소(辭韓山郡守疏)」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키면서 군수와 의병장을 겸임할 수 없음을 이유로 사직을 청한 것이다. 「정제독문(呈提督文)」은 명나라 장수에게 보낸 외교문서로서, 종정사인(從政舍人) 오승공(吳承公) 등의 비행을 지적하여 시정하여줄 것을 엄중히 항의하였다.
서의 「답평안병사유형(答平安兵使柳珩)」은 1598년 서울에 돌아올 때 임진왜란 중 도와준 것에 대하여 유형에게 감사를 표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