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원경(元卿). 조상형(趙尙絅)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정(趙晸)이고, 아버지는 경상도관찰사 조진택(趙鎭宅)이며, 어머니는 김상행(金常行)의 딸이다.
1792년(정조 16) 사마시에 합격하고, 1799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부교리·우승지를 역임하였다. 그 뒤 1810년(순조 10) 안주목사가 되고, 이듬해 홍경래(洪景來)의 난이 일어나자 민병을 규합, 난의 평정에 진력하였다.
1813년 황해도관찰사, 이어 한성부의 좌윤·우윤을 거쳐 공조·형조·호조의 참판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이어 경기도관찰사를 지냈으며, 예조·이조의 판서를 지냈다. 1829년 우참찬에 임명되었으나 곧 죽었다.
벼슬길에 오른 초기부터 경제문제에 관심을 두었으며, 국가의 전장제도(典章制度)와 백성들의 이해문제 해결에 진력하였다. 성력(星曆)·복서(卜筮)·용병(用兵)의 요체(要諦)에도 밝았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