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영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호조참판, 예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원경(元卿)
시호
충간(忠簡)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71년(영조 47)
사망 연도
1829년(순조 29)
본관
풍양(豊壤)
주요 관직
호조참판|예조판서|우참찬
관련 사건
홍경래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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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호조참판, 예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원경(元卿). 조상형(趙尙絅)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정(趙晸)이고, 아버지는 경상도관찰사 조진택(趙鎭宅)이며, 어머니는 김상행(金常行)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92년(정조 16) 사마시에 합격하고, 1799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부교리·우승지를 역임하였다. 그 뒤 1810년(순조 10) 안주목사가 되고, 이듬해 홍경래(洪景來)의 난이 일어나자 민병을 규합, 난의 평정에 진력하였다.

1813년 황해도관찰사, 이어 한성부의 좌윤·우윤을 거쳐 공조·형조·호조의 참판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이어 경기도관찰사를 지냈으며, 예조·이조의 판서를 지냈다. 1829년 우참찬에 임명되었으나 곧 죽었다.

벼슬길에 오른 초기부터 경제문제에 관심을 두었으며, 국가의 전장제도(典章制度)와 백성들의 이해문제 해결에 진력하였다. 성력(星曆)·복서(卜筮)·용병(用兵)의 요체(要諦)에도 밝았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참고문헌

『정조실록(正祖實錄)』
『순조실록(純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청선고(淸選考)』
『연천집(淵泉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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