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좌호

  • 역사
  • 인물
  • 일제강점기
  • 현대
해방 이후 『동양사대관』, 『국사신강』, 『한국사통론』 등을 저술한 학자. 역사학자.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창녕(昌寧)
  • 사망 연도1991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917년
  • 출생지경상남도 창원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창수 (동국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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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동양사대관』, 『국사신강』, 『한국사통론』 등을 저술한 학자. 역사학자.

개설

본관은 창녕(昌寧). 경상남도 창원 출신. 조희성(曺喜誠)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31년 향리의 남면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4월 대구사범학교에 입학하였다. 1933년 대구사범학교 재학 시절에 항일민족운동 서클에 가담해 활동하다가 일본경찰에게 붙잡혀 그 해 12월 강제 퇴학당하였다.

이듬해 9월 석방되는 즉시 상경해 배재고등보통학교에 편입, 1936년에 졸업하였다. 그러나 항일운동 서클사건으로 국내에서의 대학진학이 어렵게 되자 일본유학을 떠났다. 일본의 시마네현(島根縣)에 있는 마쓰에고등학교(松江高等學校)를 거쳐 1941년 동경제국대학 문학부 동양사학과에 입학하였다.

1943년 9월 동경제국대학을 졸업하면서 동아연구소(東亞硏究所)의 연구원이 되어 연구생활을 계속하였다. 1945년 8월 광복을 맞아 귀국해 같은 해 9월 연희전문학교 조교수를 시작으로 1947년 부산대학, 1952년 동아대학을 거쳐 1953년부터 1966년까지 동국대학교, 그리고 1966년 7월부터 1982년 8월 정년퇴임할 때까지 성균관대학교에서 교수로서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특히 1983년 1월부터 1987년 2월까지 성균관대학교 총장으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민간학술재단에도 관계를 맺어 1981년에는 민족주의사학의 선구자 장도빈(張道斌)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산운학술문화재단(汕耘學術文化財團 : 지금의 고려학술문화 재단)의 이사장으로서 별세할 때까지 사학계에 큰 공헌을 하였다.

주요저서로는『동양사대관』·『국사신강』·『한국사통론』등의 개설서가 있으며, 그 밖에『한국과거제도사연구(韓國科擧制度史硏究)』등의 논저와 많은 논문이 있다. 1970년 국민훈장 동백장 및 1982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하였다.

참고문헌

  • - 『남계조좌호박사화갑기념논총』현대사학의 제문제(남계조좌호박사화갑기념사학논총간행위원회 편, 일조각,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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