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지평, 보덕, 창원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 해 건주위(建州衛) 정벌을 위하여 파견된 서정대장(西征大將) 어유소(魚有沼)의 종사관이 되어 서정에 참가했으나, 어유소의 파병(罷兵)과 관련된 전명(傳命)을 잘못하여 고신을 몰수당하고 외방에 유배되었다. 그 뒤 1481년 “문학에 뛰어난 인물이니 서용하라.”는 성종의 특지에 따라 서반직에 복직된 뒤 교리·형조정랑·지평·응교, 세자시강원필선·보덕을 역임했으며, 이와 함께 경연(經筵)의 시독관(侍讀官)과 시강관(侍講官)을 항상 겸대하였다.
이어 1495년(연산군 1) 창원부사로 파견되었다가 곧 사직하고, 지리산에 은거하여 학문에 전념하였다. 1504년 갑자사화가 일어나, 세자시에 그의 풍간(諷諫)함과 집요한 진강(進講)을 혐오했던 연산군의 기휘(忌諱)로 이에 연루되어 참살되었다. 성종 때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되었으며, 충효와 시문으로 명망이 높았다. 『동문선』에 「언심견투(彦深見投)」라는 제목의 시 1수가 전한다.
1506년 (중종 1) 관작이 회복되고 통정대부 승정원도승지에 추증되면서 신원(伸寃: 억울하게 입은 죄를 풀어줌)되었다. 경상남도 진주의 신당서원(新塘書院)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 『성종실록(成宗實錄)』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국조방목(國朝榜目)』
- 『남명집(南冥集)』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대동기문(大東奇聞)』
- 『해동잡록(海東雜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동문선(東文選)』
- 『한국인(韓國人)의 족보(族譜)』(일신각,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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