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형 A5판. 182면. 1956년 정음사(正音社)에서 간행하였다.
제1부 ‘지옥기(地獄記)에서’에는 「길」·「지옥기」·「손」 등 16편, 제2부 ‘풀잎 단장(斷章)에서’에는 「방」·「풀잎단장」·「창(窓)」 등 14편, 제3부 ‘달밤에서’에는 「마을」·「호수(湖水)」·「유곡(幽谷)」 등 12편, 제4부 ‘산우집(山雨集)에서’에는 「파초우(芭蕉雨)」·「낙화(落花) 1」·「정야(靜夜) 1」 등 15편, 제5부 ‘고풍의상(古風衣裳)에서’에는 「고풍의상」·「봉황수(鳳凰愁)」 등 13편, 모두 70편이 수록되어 있다. 책 말미의 후기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70편 가운데 38편은 여러 선집에 수록하였던 것이며, 나머지 32편은 미수록 작품이다.
「영상(影像)」 등 제1부의 습작기 시는 현실에 대한 절망과 분노를 내용으로 담고 있으며, 아울러 그에 대한 위기감과 불안의식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제2부에서는 “아 우리들 太初(태초)의 生命(생명)의 아름다운 分身(분신)으로 여기 태어나/고달픈 얼굴을 마주 대고 나직이 웃으며 얘기하노니(풀잎斷章)”라는 구절처럼 대자연의 질서에 대한 미시적 응시를 통하여 인간과 자연, 자연과 우주의 조화와 교감을 노래하였다.
「고사(古寺) 1」 등 제3부의 시에는 조지훈 시 특유의 정적미·고취미·아어미(雅語美)를 바탕으로 선(禪) 감각과 화해의 미학이 잘 구현되어 있다. 그러나 「완화삼(玩花衫)」 등 제4부에 수록된 시에서는 “구름 흘러가는/물길/꽃은 지리라/흔들리며 가노니”와 같이 흐름의 이미지 혹은 떠나감의 이미지 등 낙하의 상상력, 소멸의 상상력이 작용하고 있다.
정관적(靜觀的)이며 정지적인 이미지가 감각을 심화시켜주는 것과, 상대적인 각도에서 이러한 낙하적 이미지 또는 소멸이라는 동태적 이미지가 지속적으로 작용함으로써 미적 긴장을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인생의 현상적인 모습이 흘러감·떠나감·낡아감이라는 지속과 변화의 원리에 근거하여 허무한 것, 덧없는 것으로서의 존재론적 깨달음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시적 깊이를 지닌다 하겠다.
「고풍의상」 등 제5부의 초기 시에서는 국권 상실의 시기에 있어서 전통 정신의 부활과 국어의 미의 발굴을 통하여 민족혼을 확립하고 민족어를 완성하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이 시선집은 자연에 대한 섬세한 투시와 인간의 생명 현상에 대한 진지한 탐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