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기백(起伯). 조충수(趙忠秀)의 아들이며, 우의정 조정(趙挺)의 형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1576년(선조 9) 생원이 되고, 1579년 천거로 왕자사부(王子師傅)가 되었고, 1596년(선조 29) 용강현령, 1599년 성천부사를 역임하였다. 1605년 좌의정 기자헌(奇自獻)의 수뢰(受賂)사실을 폭로하였다가 삭출당하였다.
1608년 광해군이 즉위하자 잠저(潛邸)시절에 세자를 보도한 공으로 복관되고 총애를 받는 한편, 동생 정을 이조의 요직에 앉히고 자신은 공신이 되어 한산군(漢山君)에 봉하여졌다. 1610년 삭주군수, 1614년 개성유수·판결사를 거쳐, 1618년 공조판서, 1622년 판중추부사가 된 뒤 80세에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광해군은 그에 대하여 특별한 은총을 베풀어, 그가 상을 당하였을 때에는 경기관찰사에게 명하여 그 상을 호송하게 하기도 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삭직되었다. 편서로 『상제례문답(喪祭禮問答)』 2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