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신안(新安). 1895년부터 소령원수봉관(昭寧園 守奉官), 궁내부 회계원 출납사 주사, 왕후궁주사, 내부참서관, 법부형사국장, 궁내부 시종원시종 등을 역임하였다. 1895년 임최수(林最洙), 이도철(李道徹) 등이 친일개화파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해 기도했던 춘생문사건(春生門事件)에 협력한 공로로 1897년 특별히 3품으로 올려졌다.
이후 군부협판, 법부협판 겸 고등재판소판사, 법규교정소의정관, 탁지부협판, 강원도관찰사, 원수부검사총장 등을 역임하였다. 1901년 평리원재판장 김영준(金永準) 등이 외국 공사관에 익명서를 투입하는 등 정변을 꾀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고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평리원에서 태(笞) 1백, 백령도 종신유배형을 선고받았다.
1902년 징계에서 특별사면되어 중추원의관, 원수부기록총장, 겸임 임시혼성여단장, 충청남도관찰사, 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하고, 1904년에 의정부 찬정이 되었다가 주차미국특명전권공사로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는 않았다. 이 후 강원도, 전라남도, 충청남도, 함경남도의 관찰사를 역임하고 1906년 중추원 찬정이 되었으며 품계는 정2품 자헌대부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