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근(權近: 1352~1409)은 조선 전기의 유학자로,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가원(可遠) · 사숙(思叔), 호는 양촌(陽村) · 소오자(小烏子)이다. 그는 특히 경학(經學)에 조예가 깊었는데, 『입학도설(入學圖說)』과 『오경천견록(五經淺見錄)』은 그의 경학을 대표하는 저작이다. 『주역천견록(周易淺見錄)』은 『오경천견록』 중 하나이다.
3권 3책의 목판본으로 유일본이다. 1971년에 보물 제550호로 지정되었다. 이겸로(李謙魯)의 개인 소장본이었다가 현재는 재단법인 현담문고에 소장되어 있다. 영인본이 『한국역학대계』[여강출판사, 2001]에 수록되어 있고, 『한국경학자료집성: 역경편』[성균관대학교 출판부, 1996]에는 연구자 최영성(崔英成)의 필사본이 수록되어 있다.
『양촌선생연보』에는 1391년(공양왕 3)에 권근이 충주(忠州)의 양촌(陽村)에 은거하면서 『주역천견록』을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주역천견록』에는 서문이나 발문이 없어 간행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천혜봉은 『세종실록』 15년[1433] 2월 권근의 제자 김반(金泮)이 『역 · 서 · 시 · 춘추천견록(易 · 書 · 詩 · 春秋淺見錄)』의 간행을 건의하여 세종이 이에 대한 검토를 명하였다는 기록과, 『주역천견록』과 『시 · 서천견록』이 1429~1430년에 작성된 여러 공문서의 배면에 인쇄되었다는 점을 근거로 1430년(세종 12)에서 1450년(세종 말년) 사이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한다.
『주역천견록』 제1권은 소제목이 ‘역설상경(易說上經)’으로, 서두에 총론에 해당하는 글이 있고 건(乾)에서 이(離)까지 상경의 30괘에 대한 해설이 이어져 있다. 제2권은 소제목이 ‘역설하경(易說下經)’으로 함(咸)에서 미제(未濟)까지 하경의 34괘 중 26괘에 대한 해설이다. 제3권 ‘역설계사(易說繫辭)’는 「계사전(繫辭傳)」과 「설괘전(說卦傳)」의 주요 부분에 대한 해설로, 십익 중 「서괘전(序卦傳)」과 「잡괘전(雜卦傳)」은 빠져 있다.
『주역천견록』은 주로 정이천의 『역전(易傳)』과 주희의 『주역본의(周易本義)』를 바탕으로 『주역』을 해석하면서 원(元) 대 학자 오징(吳澄: 1249~1333)의 『역찬언(易纂言)』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강문식의 연구에 따르면 『주역천견록』은 이외에도 주희의 『역학계몽(易學啓蒙)』과 『주자어록(朱子語錄)』을 다수 인용하고 있고, 오징에 대해서는 주희를 종주로 삼은 점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견강부회적인 해석과 경문(經文) 개정에 대해서는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그는 『주역천견록』의 경학사적 의미를 ‘주희를 중심으로 한 정이천과 주희의 절충’이라고 평가한다.
또한 『주역천견록』은 상경과 하경의 관계를 천도(天道)와 인도(人道), 체(體)와 용(用)의 관계로 파악하면서 천인합일(天人合一)과 체용일원(體用一源)의 입장에서 『주역』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주역천견록』은 현전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역학 문헌으로서 여말선초의 경학 수준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엄연석은 이러한 『주역천견록』이 ‘새로운 왕조의 문물과 규범이 요구되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주역』에서 성리학적 본체론과 유가적인 도덕 실천의 토대를 찾고자 한 권근의 독창적인 노력의 산물’이라고 그 의의를 높게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