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여중(汝中), 호는 입암(立菴). 아버지는 주기섭(朱箕燮)이며, 어머니는 청주한씨(淸州韓氏)로 한예성(韓禮成)의 딸이다. 백부 주종섭(朱宗燮)에게 입양되었으며, 유중교(柳重敎)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세에 과장(科場)에서 시문으로 이름을 날리고, 향시(鄕試)와 성시(省試)에 연이어 합격하였으나, 국가가 점점 혼란스러워지자 벼슬을 포기하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1895년(고종 32) 장담(長潭)에서 『성재집(省齋集)』 간행에 종사하다가 명성황후(明成皇后)가 시해되고 단발령이 선포되자, 『성재집』 간행을 중지하고 유인석(柳麟錫)을 주석으로 의병을 일으켰다.
유인석의 휘하에서 참모로 활약하면서 팔도(八道)와 백관(百官), 각 국 공사(公司)에게 보내는 격문(檄文)을 짓기도 하였는데, 이듬해인 1896년 충주에서 일본군과 싸우다가 적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주용규의 아들인 주현오(朱鉉五)와 주현삼(朱鉉三)도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이강년(李康䄵)과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가 모두 절사(節死)하였다.
『심경(心經)』·『근사록(近思錄)』·『주자대전(朱子大全)』·『송자대전(宋子大全)』 등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였으며, 당시 이항로(李恒老)의 문하에서 대두되었던 심설(心說) 문제에 대하여는 유중교의 입장을 적극 지지하여 유중교를 공격하는 홍재구(洪在龜)·유기일(柳基一) 등을 배척하였다. 저서로는 『입암집(立菴集)』이 있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