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과 삼베를 이어 마련한 바탕감에 채색했는데, 석가모니의 신체에 해당하는 중앙부에 비단을 두었다. 그림의 크기는 세로 509㎝, 가로 263㎝이다. 화면 크기는 세로 434㎝, 가로 243㎝로, 지금까지 남아있는 괘불탱 중에서 가장 작다. 수인(首印)과 신헌(信軒) 두 화승(畵僧)이 그렸으며,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 죽림사에 소장되어 있다. 199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화기에 '천계삼년임술십일월십칠일죽림사정중괘불세존탱(天啓三年壬戌十一月十七日竹林寺庭中卦佛世尊幀)'이라고 되어 있다. 이를 통해 1622년에 정중(庭中), 즉 법당 밖 마당에서 열린 야외 의식에 사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천계 3년은 1623년이고 임술은 1622년이어서 연대가 일치하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간지를 기준으로 하므로, 1622년에 제작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제작 장소는 먹으로 지우고 그 옆에 ‘죽림사(竹林寺)’라고 적어 넣어서 원소재지를 알 수 없다. 죽림사 승려들의 말에 따르면, 한국전쟁 이후 전라남도 장성군의 한 사찰에서 이동한 것이라 한다.
17세기 조선왕조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유린된 국토를 복구해야 했으며, 사찰은 전소되거나 파괴된 건물을 재건해야 했다. 불교계는 당면한 불사의 와중에도 전란으로 죽은 많은 이들의 영혼을 천도해야 했고, 재난으로 고통받는 민중을 위로하고 결속해야 했다.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인 괘불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출현했다. 죽림사 「세존괘불탱」은 괘불의 시작을 보여주는 첫 작품으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주존인 석가여래는 연꽃 봉우리 모양의 광배(光背)를 배경으로, 주1의 수인을 한 채 연화대좌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하고 있다. 둥근 얼굴에 반개(半開)한 눈과 작은 입, 붉은 주2이 가해진 통통한 양 볼이 특징적이다. 좁은 어깨와 무릎 너비, 가는 오른팔, 투박한 손 등이 다소 어색하지만, 화면에 크게 독존으로 묘사되어 있어 존상의 위엄은 잘 살아 있다. 석가여래가 입은 옷에는 금니로 보상화문(寶相華文)을 가득 그려 넣었다. 붉은색, 녹청색, 노란색 등을 조화롭게 사용해 전체적으로 온화하면서도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조선시대 불화 중 석가모니를 독존으로 그린 드문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