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중천설은 구중천설(九重天說)과 십이중천설(十二重天說)이 있었다. 구중천이라는 말은 동양에도 이미 있었는데, 예를 들면 굴원(屈原)의 ≪천문 天問≫이라는 책에도 나온다.
그러나 구중천설이 우리나라에 널리 인정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서양문물이 들어온 뒤부터이다. 마테오 리치(Matteo Ricci)가 지은 ≪천주실의 天主實義≫에 이미 월륜천(月輪天)·수성천(水星天)·금성천(金星天)·일륜천(日輪天)·화성천(火星天)·목성천(木星天)·토성천(土星天)·수상천(宿象天)·종동천(宗動天)의 구중천이 소개되어 있다.
이것이 중국에 소개되었고, 다시 우리나라 학자들에게 서서히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18세기 초반에 쓴 이익(李瀷)의 글에 구중천설이 소개되어 있다. 그러다가 좀더 정밀한 천체운동의 계산을 위하여 십이중천설이 대두되었다.
이익의 ≪성호사설≫에 의하면, 십이중천은 구중천에다 동서세차천(東西歲差天)·남북세차천(南北歲差天)을 종동천의 내부에 더하여주고, 종동천 밖에는 영정부동천(永靜不動天)을 더하여준 것이다.
이렇게 달·행성·해, 그리고 항성이 모두 서로 다른 하늘에 위치하고 있다는 우주관은 그 때까지의 전통적 우주관이었던 혼천설(渾天說)과 대체되기 시작하여 18세기 초 영조대까지는 조선조의 공인된 우주관이 되었다.
그리하여 ≪증보문헌비고≫의 상위고에는 천지에 대하여 마테오 리치에 의하여 발전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십이중천설’을 기술하기에 이르렀다.